1973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된 영산재(靈山齋)의 보유자(1987년 지정, 1997년 해제). 성은 정(鄭)씨이며 이름은 순정(淳政). 광주광역시 출생. 1941년전라남도 해남대둔사(大芚寺)에서 광초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출가 직후 대둔사에서 영산재가 봉행되는 모습을 보고 한 순간에 매료되었다고 하며, 1942년 전라남도 강진고성사(高聲寺)에서 당시 불교의식의 대가였던 남파(南波) 문하에서 본격적인 범패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후 고성 일림사의 구련, 장흥 신흥사의 벽옥 등에게서 조화(造花)작법 및 가사작법 등을 배웠다. 종이꽃이나 재 중에 입는 가사를 만드는 작업은 영산재에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지광은 그 기능의 전수자가 거의 없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 했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 신촌 봉원사(奉元寺)의 송암(松岩) 문하에서 범패를 계속 익힌 그는 영산재 기능보유자 가운데서도 범패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데에는 단연 뛰어났다는 평가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기념행사로 봉원사에서 개최된 영산재는 이틀동안 계속되었으며 지광은 이 재를 앞장서 이끌었다. 서울인왕산 지광암과 은평구 응암동은평정사(恩平精舍)에 머무르며 후학지도에 전념하던 그는 은평정사에서 세속 나이 72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1997년 3월 18일 영산재 인간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영산재보존회 이수자 등이 모두 모여 그의 49재를 영산재 의식으로 봉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