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고종 19) 조호익의 후손 조광복(曺光復)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이돈우(李敦禹)의 발문이 있다. 198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도산급문제현집(陶山及門諸賢集)』 제3권으로 영인·간행하였다.
본집 6권 3책, 부록 3권 1책, 총 9권 4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수에 세계도(世系圖)·목록이 있고, 권1에 부·시, 권2·3에 서(書), 권4에 축문·제문·묘지명, 권5에 전(箋)·서(序)·기·발·잡저, 권6에 이기변·제서질의가 수록되어 있다. 부록의 권1에 연보, 권2에 저자에 대한 사제문·만사·행장·시장·신도비명·묘갈명·상향문 등, 권3에 저자의 배향서원인 도잠(道岑)·학령(鶴翎)·청계(淸溪) 등 서원의 편액 및 시호를 청(請)하는 소와 회계(回啓)가 수록되어 있다.
서독(書牘)을 보면 당시 명유들인 유성룡(柳成龍)·정구(鄭逑)·이항복(李恒福)·장현광(張顯光)·곽재우(郭再祐) 등과 주고받은 것이지만, 학술적인 토론은 보이지 않고, 다만 정구의 문인이었던 임흘(任屹)에게 보낸 문답 편지가 주목될 뿐이다. 「답임흘문목(答任屹問目)」은 임흘이 『성리대전』·『예기』 등의 난해한 구절을 질문한 데 대한 답인데, 간혹 용어의 한글 풀이도 보인다.
잡저 가운데 「태극론」·「논성(論性)」은 주리론(主理論)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고, 「퇴계선생언행록」은 이황(李滉)의 언행에 관한 것으로 몇 가지 자신의 소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 중 이황을 중국의 성리학자 정호(程顥)의 기풍에 비유한 것이라든가, 이황이 조정에 나가기를 싫어한다는 세인의 평에 대해 스승을 옹호하고 변명한 것 등이 흥미롭다.
「제서화담귀신사생론후(題徐花潭鬼神死生論後)」는 이학파(理學派)의 입장에서 서경덕(徐敬德)의 기학(氣學)을 비평한 것이다. 「제남명조선생을묘사직소후(題南冥曺先生乙卯辭職疏後)」는 조식(曺植)이 유불(儒佛)은 형이상학에서는 취지가 같다는 말을 한 데 대한 비평이다. 「제남명관서문답변후 題南冥關西問答辨後」는 이언적(李彦迪)의 「관서문답」에 대한 조식의 잘못된 변론을 비판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저자의 식견은 물론 당시 이황 문하의 남명학파에 대한 견해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이기변」은 각 경전에서 이기(理氣)와 심성에 관한 문구를 뽑고, 그 아래에 주희(朱熹) 등 여러 학자의 주석을 싣고, 끝에 자신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그 주요 내용은 인간의 본성과 기품(氣稟), 그리고 여기에서 기인된 수요귀천(壽夭貴賤)을 논한 것이다. 저자가 이것을 미완성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당초 계획은 매우 방대하였던 것 같다.
「제서질의」는 『성리대전』·『중용』 등 여러 책에서 문제가 되는 문구를 뽑아내 고증을 하기도 하고 혹은 주해를 붙이기도 한 것이다. 책문 3편에서는 태극·무극 등 성리학에 관한 저자의 논술을 볼 수 있다. 그밖에 「유묘향산록(遊妙香山錄)」·「유향풍산록(遊香楓山錄)」 등 2편의 등산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