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내용
측벽은 사람머리 크기의 할석을 이용해 측벽을 축조하였다. 개석은 제1호분에만 남아 있는데 인공이 가해진 커다란 할석과 판석을 섞어서 정연하게 덮었다.
돌덧널의 바닥에는 관대(棺臺)나 시상(屍床)과 같은 특별한 시설물은 없었으며 생토층을 정지하고 그 위에 부드러운 흙을 한 벌 깐 뒤 목관을 안치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규모가 큰 1호분의 봉분은 지름 9∼10m, 높이 1.5m 정도이고, 돌덧널은 길이 4.9m, 너비 0.9m, 깊이가 1m이다. 이보다 작은 2호분의 돌덧널은 길이 3m, 너비 0.5m, 깊이 0.5m이다.
유물은 3호분을 제외하고 모든 유구에서 출토되었으며 부장위치는 시신의 머리와 발치의 양쪽이었다. 토기 26점, 철기 19점, 귀걸이 1짝, 토제 구슬로 된 목걸이 1벌, 가락바퀴(방추차) 2점 등 모두 49점이 출토되었다. 규모가 가장 큰 제1호분에 많은 토기와 철기가 집중적으로 부장되는 특징이 확인되었다.
토기는 굽다리 접시(高杯) · 짧은목항아리(短頸壺) · 긴목항아리(長頸壺) · 그릇받침(器臺)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 두 점을 제외하고 모두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경상남도 일대에서 가야 후기에 속하는 유적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적인 것들이다.
특히, 고루 출토된 굽다리 접시는 형태와 경도에서 서로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유구의 중복현상과 함께 고려해볼 때, 각 자료는 시간의 추이를 반영하고 있었다.
철기는 철촉과 도끼 등의 무기류와 아울러 마구로는 재갈만이 발견되었다. 많고 다양한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들 철기가 규모가 가장 큰 제1호분에서만 출토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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