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承宣)·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어사대부(御史大夫)·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215년(고종 2)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 윤세유(尹世儒)가 최충헌(崔忠獻)에게 의지하여 권세를 잡았을 때 평소 감정이 있던 우복야(左僕射) 정진(鄭稹)을 제거하려 하였다. 왕에게 무고하기를, “정진이 그 아우 정숙첨(鄭叔瞻)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려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이 차척(車倜)을 최충헌에게 보내 은밀히 윤세유를 잡고 국문하게 하여 무고죄로 유배 보냈다.
다음해 거란의 유종(遺種)인 금산왕자(金山王子)와 금시왕자(金始王子)가 침입해 왔을 때 중군의 지원요청을 받고 전군병마사(前軍兵馬使)가 되어 안주(安州) 태조탄(太祖灘)에서 적을 막았지만 대패하였다.
일찍이 최충헌에게 붙어 아첨을 잘하여 권세를 누리다가, 1220년 최우(崔瑀)의 미움을 받아 나주(羅州)에 유배되었다. 그 뒤 최우가 비밀리에 소환하여 추밀원부사·어사대부를 제수하고, 또 자신이 사랑하는 명기(名妓) 옥기향(玉肌香)을 주어 위로하였다. 죽은 뒤 차척의 집으로 봉은사(奉恩寺)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