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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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 관서.
목차
정의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 관서.
내용

문종 때에 인원과 품계(品階)를 정하여 사(使) 1인은 3품이 겸하도록 하고, 부사(副使)는 1인으로 하되 5품이 이를 겸하도록 하였으며, 판관은 2인으로 하고 을과(乙科)의 권무(權務 : 임시로 맡아보는 사무직)가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속(吏屬)은 기사(記事)와 기관(記官)을 두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선공시(繕工寺)를 선공사(繕工司)로 고칠 때 소부(小府)와 궁궐도감(宮闕都監)·연등도감(燃燈都監)·국신색(國贐色)을 선공사에 병합하면서 창고도감도 함께 합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에 파하였다. 기능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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