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교리부·학술부·기예부(技藝部)·물가부(物價部)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학술부에는 지리·역사·물리화학·경제·농업 등에 관한 지상강의(紙上講義)로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점은 월보가 단지 교회기관지에 머무르지 않고 민중을 계몽하여 민족문화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나타내어주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창간호 학술부에 「동사개론(東史槪論)」이라는 제목으로 국사개론이 실렸다는 점으로 창간호가 나온 지 1주일 뒤인 8월 22일 국권이 상실됨으로써 다음호부터는 삭제되고 말았다.
학술부의 비중은 점점 작아져서 제24호의 사회학강의를 끝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 대신 교리부의 비중이 커지게 되는데 가끔씩 학술관계 내용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월보는 창간호부터 한글로만 된 글을 싣고 있는데, 제2호에는 교리해설과 더불어 단편소설까지 게재하고 있다.
통권 제12호부터는 언문부를 새로이 마련하여 교리·교사·교양과 더불어 소설도 소개하고 있다. 월보는 당시 서양의 계몽주의적 교양보급에 긍정적인 천도교 지도층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10년대의 천도교사상 경향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