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은 브로크먼(Brockman, F. S.), 편집인은 홍병선(洪秉璇)이다. 창간 때에는 A5판 40면의 국한문 병용이었고, 제2권부터 60면으로 증면되기도 하였으나 1930년대에 가서는 40면으로 줄어들었다.
창간사에서 김필수(金弼秀)가 밝혔듯이 창간 동기는 회황보고(會況報告)가 목적이었으나, 시대적 요청에 따라 기독교주의로 민족을 선도하며 문명향상을 꾀하고, 사상과 수양을 창달하며, 도덕적 기풍을 일으키는 데 있었다.
1941년 종간될 때까지 『청년』지는 사회주의나 기독교의 사회운동, 일제의 군국주의 확장과 한국내의 심각한 경제적 문제와 농촌문제 등에 대한 계몽적 활동은 물론, 일제 말기의 어려움을 그때그때 증언한 기록이다.
한국근대사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으며 일부가 일실되었지만, 대부분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