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년에 청평산인(淸平山人) 나암(懶庵)[^1]이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 · 문정왕후(文定王后) · 인성왕후(仁聖王后) · 순회세자(順懷世子) · 덕빈(德嬪) 등 궁중 일가의 장수와 국가의 태평 및 안녕을 기원하며 제작하였다. 발원자인 나암은 명종 대에 문정왕후의 비호 아래 불교의 부흥을 꾀한 인물로, 1555년 청평사 주지로 임명되었다. 불화는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사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일본 히로시마켄[廣島縣] 고메이지[光明寺]에 소장되어 있다.
화기는 붉은 바탕에 금선으로 구획한 화기란 안에 금으로 쓰여 있다. 존상들의 복식에는 금선으로 꽃무늬, 나선문(螺旋文), 원문(圓文) 등 다양한 문양이 표현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소형화되고 동일한 문양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고려 불화와 구별된다. 또한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의 이마, 콧날 및 턱에는 소위 삼백법(三白法) 또는 하이라이트 채색법이라고 부르는 백색의 안료를 칠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는 교토 묘만지[妙萬寺] 소장 「미륵하생경변상도」[1294]부터 확인되는데, 먼저 15세기 왕실 관련 불화들에 적극적으로 수용된 후, 16세기에 들어서면 왕실 관련 불화와 더불어 민간 발원 불화에서도 사용되었다.
제작 배경이 명확하고 16세기 왕실 관련 불화의 특징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불화 연구는 물론 불교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