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년(명종 17년) 청평산인(淸平山人) 나암(懶庵)이 명종 및 인순왕후(仁順王后)·문정왕후(文定王后)·인성왕후(仁聖王后)·순회세자(順懷世子)·덕빈(德嬪) 등 궁중 일가의 성수를 기원하며 조성한 불화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94.5㎝, 가로 85.7㎝이다. 현재 일본 고메이사(光明寺)에 소장되어있다.
발원자인 청평산인은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로서 명종대에 문정왕후에게 중용되어 문정왕후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부흥을 꾀한 명승이다. 그는 1555년 칙령에 의해 청평사의 주지로 임명되었다.
화면은 중앙에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向右]에는 사미승에 가까운 모습의 도명화상이, 오른쪽[向左]에는 합장한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좌우 각 5명씩 시왕(十王)이 배열된 비교적 간단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성법은 현재 일본의 사이호사[西芳寺]에 소장되어 있는 지장보살도나 일본 이야다니지[彌谷寺]에 소장되어있는 1546년작 지장보살도에서 볼 수 있듯이, 16세기 중엽 지장보살도의 보편적인 구도에서 조선 후기의 군도 형식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인물들의 얼굴 모습이 눈에 띄게 작아졌는데, 특히 본존의 이목구비는 얼굴 가운데로 몰려 있고 치켜 올라간 이마로 인해 그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얼굴의 특징은 일본 지온인[知恩院] 소장 숙빈 윤씨(淑賓尹氏) 발원의 자궁정사(慈宮淨社) 지장보살화와도 비슷하다. 반면 지장보살을 제외한 인물들의 얼굴은 짙은 갈색으로 그려 비현실적인 면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도명과 무독귀왕은 콧날과 이마를 흰색으로 강조해 마치 당대(唐代)의 인물화를 연상시켜 준다.
이 불화에서는 특히 많은 문양을 그려 넣은 점이 눈에 띈다. 원문(圓文)·나선문(螺旋文)·덩굴무늬·꽃무늬 등이 지장보살의 가사를 비롯해 명부시왕의 옷 전반에 걸쳐 시문되어 고려시대의 불화를 보는 듯하다. 또 명부시왕의 일부와 무독귀왕의 의복에는 용문(龍文)·구름무늬가 금니(金泥)로 화려하게 그려져 궁중 관계 불화로서의 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색채는 붉은색과 녹색이 주조로 되어 있으며, 필선은 다소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특히, 일본 사이호사 소장의 지장보살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옷주름의 표현은 거의 사라지고, 추상화되고 약화(略化)된 면을 많이 보이고 있다. 또한 화기에 의해 조성 배경을 알 수 있어 불교사적인 면에서도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