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 체조교사들이었던 조원희(趙瑗熙)·김성집(金聲集)·이기동(李基東) 등이 중심이 되어 1909년 10월 보성중학교(普成中學校)에서 조직하였다.
국민의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하여 국민의 완전한 자격을 갖추게 함은 물론, 지리멸렬 상태에 있던 각종 체육단체의 통일과 그 당시 학생들의 체위향상 및 체력단련의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고자 주로 체육의 실제면에서 제기되는 기술과 이론을 체계화시켰다. 또한 초보적이고 비조직적인 체육과목의 교육을 지도, 개선하여 진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중 조원희는 체조도입기로부터 약 10여년 동안 학교체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병식체조(兵式體操)가 아동의 신체발육에 이롭지 못한 점을 간파하여, 1910년에 미용술(美容術)·정용술(整容術)을 중심으로 한 『신편유희법(新編遊戱法)』이라는 신식체조서를 발간, 일반학생에게 널리 보급시켜 초기 체조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