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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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세곡(稅穀)의 운송을 담당하던 조창(漕倉)의 주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재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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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세곡(稅穀)의 운송을 담당하던 조창(漕倉)의 주민.

내용

조운선(漕運船)의 선장으로 추정된다. 고려 초기에 전국의 60포(浦)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호족(豪族)에 의하여 운송되던 세곡이 정종 때에 이르러 국가 주도의 조창제에 따라 조운되면서부터 출현하였다.

이들은 조창에 소속되어왔던 향리(鄕吏)의 지휘 아래 수수(水手) 및 잡인(雜人)과 함께 조창에서 경창(京倉)까지의 조운선 운행을 담당하고 있었는바, 세곡운송은 바로 그들의 신역(身役)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초공의 신역은 해상활동을 전제로 하는 것인만큼 생명의 위험을 수반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발선(發船) 기한이 지난 조운선을 운행하다가 파선하여 세곡이 없어질 경우에는 향리·수수와 더불어 이를 변상하여야 할 책임까지 진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간혹 거짓으로 파선을 핑계대어 세곡을 착복하는 불법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은 충렬왕 때 고려와 원나라의 동정군(東征軍)에 수수와 함께 차출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조(高麗朝)의 세곡운송(稅穀運送)」(최완기,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34, 1981)

  • - 「高麗時代の漕倉について」(北村秀人, 『朝鮮歷史論集』上,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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