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출신으로 일찍부터 소리를 좋아하여 청파사계(靑坡四契)축의 소리꾼 조기준(曺基俊)으로부터 사설지름시조와 가사를 배웠고, 박춘경(朴春景)으로부터 잡가를 배워 가사며 시조·잡가 등을 정확하고 원숙한 창법으로 불러 대가를 이루었다.
서울의 남녀 소리선생은 거의 그로부터 시조나 가사·잡가를 배웠다고 할 정도로 많은 제자들을 두었고, 사례를 받지 않고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광복 후에는 함화진(咸和鎭)·박헌봉(朴憲鳳) 등과 대한국악원을 결성, 민요부장으로 활약하였고, 국악가무연구회(國樂歌舞硏究會)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소리는 유개동(柳開東)·김태운(金泰運)·이명길(李命吉)·엄태영(嚴泰泳)·최정식(崔貞植)·정득만(鄭得晩)·이창배(李昌培) 등에 의하여 전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