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춘추관편수관, 홍문관직제학,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4년 시(詩)·문(文)·사(史)에 능한 문신을 뽑을 때 시학문에 소속되고, 그 해 병조좌랑 재직중 사헌부로부터 “비목(批目)을 서리에게 위임시켜 무단히 출거(出去)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고신(告身)을 박탈당하였다.
1466년 지평으로 복직하고, 그 해 실시한 발영시(拔英試)에서 2등으로 합격하였다. 1469년(예종 1) 예문관전한에 승진되고, 곧 부응교 겸 경연시강관에 개수(改授)되면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예종실록』의 편수에 참여하였다.
1475년(성종 6)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 이듬해 문과중시에서 2등으로 급제하였고, 1477년『율려신서(律呂新書)』를 학습할 문신으로 선임되었다.
1479년 홍문관직제학으로서 연산군의 생모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의 폐위에 강력히 반대하였고, 곧 부제학으로 승진하였다가 주병(酒病)으로 죽었다. 기개가 높고 시명이 있었으며, 세조 말∼성종 초에 걸쳐 문한직(文翰職)에 있으면서 문운 융성에 공헌한 바 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잡록(海東雜錄)』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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