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욱 ()

목차
국악
인물
대한제국기 가무별감을 지낸 가사, 시조의 명창.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8년(고종 15)
사망 연도
1951년
출생지
서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대한제국기 가무별감을 지낸 가사, 시조의 명창.
내용

서울출생. 잡가(雜歌)의 박춘재(朴春載) 등과 더불어 한말에 가무별감(歌舞別監)을 지냈다.

가무별감은 장악원의 악공(樂工)과는 달리 왕의 측근에서 가무로써 왕을 위로하던 소임으로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되어 있었다. 같은 가무별감이면서 박춘재는 잡가가 장기였으나 최상욱은 가사와 시조가 특기였다.

그의 가사는 모두 12가사 중에서 6곡이 전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하규일(河圭一)이 전한 8곡보다는 적은 것이다. 만년에는 인왕산 밑 필운대(弼雲臺)에서 후진양성을 하면서 자적하였다.

서울 우대(樓上洞)에서 개발한 우조시조(羽調時調)·우조지름시조에 뛰어났으며, 가사에도 독특한 창제(唱制)를 자랑하였는데, 그 제를 홍원기(洪元基)가 전수하여 보급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가창대계』(이창배, 홍인문화사, 1976)
『문예총감』(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