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출생. 잡가(雜歌)의 박춘재(朴春載) 등과 더불어 한말에 가무별감(歌舞別監)을 지냈다.
가무별감은 장악원의 악공(樂工)과는 달리 왕의 측근에서 가무로써 왕을 위로하던 소임으로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되어 있었다. 같은 가무별감이면서 박춘재는 잡가가 장기였으나 최상욱은 가사와 시조가 특기였다.
그의 가사는 모두 12가사 중에서 6곡이 전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하규일(河圭一)이 전한 8곡보다는 적은 것이다. 만년에는 인왕산 밑 필운대(弼雲臺)에서 후진양성을 하면서 자적하였다.
서울 우대(樓上洞)에서 개발한 우조시조(羽調時調)·우조지름시조에 뛰어났으며, 가사에도 독특한 창제(唱制)를 자랑하였는데, 그 제를 홍원기(洪元基)가 전수하여 보급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