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몽기(夢其). 조부는 감수국사 판병부사(監修國史 判兵部事) 최홍윤(崔洪胤)이고, 아버지는 상서호부시랑(尙書戶部侍郞) 최순(崔淳)이다. 어머니는 정안임씨(定安任氏) 임인수(任絪壽)의 딸이다.
1254년(고종 41) 강화판관(江華判官)이 되었고 이 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1260년(원종 1) 처인현령(處仁縣令)이 되어 나간 것을 시작으로 여러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중앙관직으로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전중시사(殿中侍史), 판도총랑(版圖摠郞), 전리총랑지제고(典理摠郞知制誥), 좌사의(左思議), 보문서직학사(寶文署直學士) 등을 지냈고, 지방관직으로 보주부사(甫州副使), 충주판관(忠州判官),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경상도와 전라도의 안찰사(按察使), 동계안집사(東界安集使) 등을 역임하였다. 1292년(충렬왕 18) 정헌대부 판비서성사 응선부좌첨사(正獻大夫 判秘書省事 膺善府左詹事)에 이르렀다.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를 지내던 중 1294년(충렬왕 20) 원나라가 17년간 목마장(牧馬場)으로 사용하던 탐라를 돌려주었다. 이에 따라 1295년(충렬왕 21) 다시 탐라를 제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이 해에 제주목사로 임명되었다. 1305년(충렬왕 복위 7) 향년 73세로 집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