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안악 출생. 개성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재학시절 정구선수로 동아일보 주최 전국여자정구대회에 출전하였으며, 1930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은사 백낙준(白樂濬)과 혼인하였다.
곧이어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농촌계몽 지도위원으로 사회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1934년 4월부터 연희보명학교 교사로 만 4년간 봉직하고, 1945년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여성운동에 주력하는 가운데, 1947년 대한소년단 실행위원을 거쳤다.
광복 이듬해 3월부터 4년간 서울 YWCA회장을 맡았으며, 1953년 4월부터 10년간 다시 YWCA회장직에 있었고, 1965년 2월부터 1968년 1월 20일까지, 그리고 1969년 1월부터 1973년 1월까지 거듭 연임하였다. 1979년 2월부터 1990년 죽을 때까지 서울 YWCA명예회장 자리를 지킬 만큼 YWCA의 대모(代母)로 반세기를 사회봉사활동에 바쳤다.
국제활동 또한 눈부신 바 있어 1954년 6월 미국 북장로교 부인대회 한국대표, 1959년 9월 멕시코 세계기독교여자청년대회 한국대표, 1962년 세계YWCA 국제친선부 위원, 7월 미국 남장로교 여전도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활약하였다.
1967년 4∼6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평화회의에 남편 백낙준과 함께 참석하였는가 하면, 1971년 8월 아프리카 가나에서 개최된 세계YWCA협의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국위선양에 기여하였다.
1972년 YWCA 창립50주년기념 공로표창, 그리고 같은 해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1988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전국연합회창립 60주년기념 공로표창을 받았다. 백낙준 1주기를 추념하여 남편 백낙준의 설교집 『인생의 닻』을 엮어 펴냈다. 1990년 동작동 국립묘지 백낙준 묘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