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장군으로 체복사를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377년(우왕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체복사(體覆使)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옥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장군으로 체복사를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래 천인으로서 출세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총신(寵臣) 김흥경(金興慶)을 도와 평소 김흥경이 사감을 가지고 있던 양광도도순문사 이성림(李成林)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1374년(우왕 즉위년) 공민왕을 시해한 홍륜(洪倫)의 아버지 전라도도순문사 홍사우(洪師禹)와 형 홍이(洪彛)를 합주(陜州)에서 목을 매달아 죽였으며, 이듬해에도 안협(安峽: 강원도 伊川)에 숨어 지내던 충혜왕의 아들 석기(釋器)의 참수형을 집행하였다.

이 해 왜구가 밀성(密城)에 들어와 불태우고 노략질하는데도 만호가 막지 못하자 장군으로서 체복사(體覆使)가 되어 가서 안무하였다. 1377년 청주에 체복사로 나가 지윤(池奫)의 일당인 김승득(金承得)·이열(李悅)·화지원(華之元)을 국문하여 자복시키고 참형에 처하였다.

곧이어 체복사로 나가 왜적을 막지 못한 양광도도원수 왕안덕(王安德)의 책임을 물었는데, 이 때 왜적이 강화로부터 양광도로 침입하여 피해가 막심하였다.

그러나 조정에 돌아와서는 왕안덕·홍인계(洪仁桂)·인해(印海)를 독려하여 직산현(稷山縣)에서 왜적을 쳐서 50여 명의 목을 베자 적이 궤멸하여 달아났다고 거짓 보고하여 왕이 상을 내렸는데, 이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매를 맞고 영천으로 귀양가던 중 길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