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천인으로서 출세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총신(寵臣) 김흥경(金興慶)을 도와 평소 김흥경이 사감을 가지고 있던 양광도도순문사 이성림(李成林)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1374년(우왕 즉위년) 공민왕을 시해한 홍륜(洪倫)의 아버지 전라도도순문사 홍사우(洪師禹)와 형 홍이(洪彛)를 합주(陜州)에서 목을 매달아 죽였으며, 이듬해에도 안협(安峽: 강원도 伊川)에 숨어 지내던 충혜왕의 아들 석기(釋器)의 참수형을 집행하였다.
이 해 왜구가 밀성(密城)에 들어와 불태우고 노략질하는데도 만호가 막지 못하자 장군으로서 체복사(體覆使)가 되어 가서 안무하였다. 1377년 청주에 체복사로 나가 지윤(池奫)의 일당인 김승득(金承得)·이열(李悅)·화지원(華之元)을 국문하여 자복시키고 참형에 처하였다.
곧이어 체복사로 나가 왜적을 막지 못한 양광도도원수 왕안덕(王安德)의 책임을 물었는데, 이 때 왜적이 강화로부터 양광도로 침입하여 피해가 막심하였다.
그러나 조정에 돌아와서는 왕안덕·홍인계(洪仁桂)·인해(印海)를 독려하여 직산현(稷山縣)에서 왜적을 쳐서 50여 명의 목을 베자 적이 궤멸하여 달아났다고 거짓 보고하여 왕이 상을 내렸는데, 이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매를 맞고 영천으로 귀양가던 중 길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