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百戶)의 직위에 있었으며, 세종 치세기간의 10여년 간에 명나라와 조선을 내왕하는 사신의 일행으로서 조선의 처지를 대변하는 데 많은 구실을 하였다.
1426년(세종 8) 사신으로 온 이래 거의 매년 내왕하였다. 1431년에 중국의 예부상서(禮部尙書)가 조선의 표·전문이 어찌 이리 잘 되었느냐고 묻자, 조선의 선비들이 모두 근면하여 책 읽기를 부지런히 하기 때문이라고 조선을 높여 대답하였다.
1433년 조선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자 사신을 대접하는 일을 전례대로 하지 말고 적당히 줄여 간편하게 하라고 편의를 베풀기도 하였다. 야인(野人) 달달 지방에 자주 사신으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여진어·몽고어에도 능하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그에게 여러 차례 하사품을 내렸고, 그가 부탁하는 일은 최대한 들어주어 그와 그의 부하들이 요구하는 물품을 제공하였고, 한편으로 죄지은 그의 족친(族親)들도 선처하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