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진숙(晉叔), 호는 농수(農叟). 아버지는 흥해의 아전이었던 준걸(俊傑)이다.
어려서 같은 고을의 운와(耘窩)라는 사람에게 배웠으며, 이형상(李衡祥)에게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집안 대대로 흥해의 군리(郡吏)였는데, 그만은 열심히 공부해서 진사시에 급제했다. 그러나 진사시에 급제하자 분수에 족하다고 하면서 다시는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군리로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방으로 배우러 다니며 학문에 힘썼다.
만년의 30여 년 동안은 후진을 양성하며 보냈다. 그의 문하에서 유인복(柳寅福)·최기대(崔基大)와 같은 인물이 배출됐다. 외지고 작은 마을인 흥해에서 이름 높은 선비들이 그 뒤에 많이 배출된 것은 최천익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시문에 능하여 성대중(成大中)·신유한(申維翰) 등 당대의 일류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고금의 역사와 정치 등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으나, 아전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한계 때문에 뜻을 펴지 못했다. 정조 때 병조판서를 지냈던 권엄이 그의 능력을 알고 관찰사에게 말해 조정에 천거하려했으나 하지 못했다.
저서로는 초간본 『농수고(農叟稿)』 1권 1책과 중간본 『농수집(農叟集)』 2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