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농수고』, 『농수집』 등을 저술한 시인. 여항시인.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집안 대대로 흥해의 군리(郡吏)였는데, 그만은 열심히 공부해서 진사시에 급제했다. 그러나 진사시에 급제하자 분수에 족하다고 하면서 다시는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군리로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방으로 배우러 다니며 학문에 힘썼다.
만년의 30여 년 동안은 후진을 양성하며 보냈다. 그의 문하에서 유인복(柳寅福)·최기대(崔基大)와 같은 인물이 배출됐다. 외지고 작은 마을인 흥해에서 이름 높은 선비들이 그 뒤에 많이 배출된 것은 최천익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시문에 능하여 성대중(成大中)·신유한(申維翰) 등 당대의 일류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고금의 역사와 정치 등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으나, 아전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한계 때문에 뜻을 펴지 못했다. 정조 때 병조판서를 지냈던 권엄이 그의 능력을 알고 관찰사에게 말해 조정에 천거하려했으나 하지 못했다.
저서
참고문헌
- 『농수고(農叟稿)』
-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 『희조질사(熙朝軼事)』
- 『한국평민문학사(韓國平民文學史)』(구자균, 고려문화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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