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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여문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농사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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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가을에 여문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농사일.
내용

가을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벼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모를 내며, 김을 매고, 가을걷이를 하는 세 가지 일을 일년중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손꼽는다. 또, 이러한 일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마쳐야 하므로 대부분 품앗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가을걷이는 가을에 영근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다. 벼 · 콩 · 기장 · 조 · 옥수수 · 귀리 · 메밀 등 곡식 및 목화 등의 각종 농산물을 거두어들이고 갈무리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벼:벼를 베는 데에는 잦쥐고 베기와 엎쥐고 베기의 두 방법이 있다. 예전에는 벼가 꼬부라진 뒤에 모두 잦쥐고 베었으나 근래에는 벼뿐만 아니라 보리도 엎쥐고 벤다.

볏단은 주먹만큼의 양을 한 뭇이라 하고 20뭇을 한 가리라고 이른다. 영동지방에서는 벼를 다발로 묶으며 쌀 한 되 가량 될 만큼을 한 다발이라 하고, 20다발을 한 광이라고 부른다.

벼를 말릴 때에는 20뭇을 단위로 하여 논바닥에 동서로 20여일 간 세워둔다. 이렇게 해야 아침의 동풍과 저녁의 서풍을 받아 잘 마른다. 영동지방에서는 볏단을 한 줄로 나란히 세워 말리는데 이를 장광이라고 부른다. 이때에는 한 광마다 벼를 한 묶음씩 거꾸로 세워서 표시한다.

경상북도 울진에서는 소작인과 주인이 수확을 반씩 나누었는데, 소작인이 나락을 떨어주는 경우에는 그 댓가로 짚을 소작인이 차지하였다. 또, 지주가 비료를 댈 때에는 논에서 벤 벼를 다발 그대로 나누며 소작인은 타작을 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관행을 ‘당갈림’이라고 한다.

떨어낸 나락은 마당 한구석에 ‘나락뒤주’를 설치하고 이에 갈무리하고 필요한 때마다 꺼낸다. 따라서, 추수 무렵에 세워진 나락뒤주는 봄쯤되면 자취를 감추게 마련이다. 나락뒤주는 땅바닥에 짚을 10㎝쯤 깔고 이에 멍석을 둥글게 둘러친 것으로 위에는 짚으로 주저리를 짜서 씌운 것이다.

근래에는 쥐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멍석 대신 함석을 둘러서 울을 삼기도 하며 경상남도 진양군 일대에서는 대로 엮은 큰 항아리 모양의 뒤주를 쓰기도 한다.

경상북도 울진에서는 탯돌 아래에 떨어진 것을 모아두었다가 이듬해의 씨나락으로 썼으며, 영덕에서는 씨나락을 논에서 가려뽑아서 가마니에 넣어 습기가 없는 방이나 창고에 따로 보관한다.

만약 씨나락이 있는 방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 씨를 쓰지 않으며 노인의 병이 깊어지면 먼저 씨가마니부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보통이다.

예전에는 짚으로 짠 보통 15말들이 큰 멱서리에 나락을 담아 광이나 방 또는 마루 한구석에 두었으나 20말들이 섬이 나오면서 이에 담아 층층이 쌓아두었다. 그리고 민족항일기에는 10말들이 가마니를 많이 썼으며 근래에는 아홉 말들이 마대에 담아 갈무리한다.

② 콩:콩은 거두는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강원도 명주군에서는 8월 말 호미로 콩대를 끊어 거둔 다음 짚으로 세워놓고 말린다. 집으로 옮긴 뒤에는 뿌리가 밖으로 향하도록 둥글게 가리를 쌓아두며 필요한 때마다 내려서 도리깨로 턴다.

마당질을 마치고 갈퀴로 대나 깍지 따위를 따로 긁어 모으며 콩은 거두어 키에 드리운다. 이 때 맞은편에서 부뚜로 바람을 일으켜 먼지 따위의 잡물이 가려지도록 한다.

콩은 다른 방법으로도 고른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좌우에 지게를 놓은 다음 두 지게의 새고자리 사이에 막대를 걸며 막대에는 쑥대로 엮은 발을 쳐 둔다. 발의 너비는 70㎝, 발과 땅 사이의 각도는 45°쯤 되는 것이 좋다.

큰 말 위에 올라선 사람은 쑥대발 쪽으로 콩을 드리우고 맞은편에서는 부뚜를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면 콩이 발 아래로 흘러내릴 때 흙 따위는 날과 날 사이로 떨어지며, 먼지나 검부러기는 바람에 날린다. 고른 콩은 멱서리나 섬에 담아 갈무리한다.

콩대는 거두어 따로 쌓아두며 깍지는 수수깡으로 둘러친 깍지동이라고 하는 둥근 울안에 갈무리하였다가 겨우내 쇠죽을 쑬 때마다 넣는다.

한편, 꺾은 콩을 수수깡으로 싸서 밭가에 세워둔 것이 콩동으로, 콩밭에는 으레 수수를 간작(間作)으로 심어서 거둔 콩을 그 자리에서 싸서 묶을 수 있도록 한다. 수수는 콩보다 먼저 이삭을 잘라서 거두기 때문에 편리하게 쓸 수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는 콩을 낫으로 벨 때 딱딱 꺾어지는 소리가 나므로 ‘콩을 꺾는다’고 말한다. 반아름쯤을 한 단으로 묶으며 집 근처의 빈터인 오랍뜰에 설치한 얼루기에 재워 두달쯤 말린다.

얼루기는 서까래 같은 나무 7, 8개를 원뿔모양으로 위는 모아 묶고 아래는 벌려 놓은 다음 3, 4개의 테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콩뿐만 아니라 벼 · 보리 · 수수 · 조 · 밀 · 귀리 등의 곡식단을 쌓아 말리는데 바닥에는 곡식단을 세우고 그 위부터는 차곡차곡 재워넣는다. 그 위에는 쑥대로 엮은 주저리를 엮어 덮으므로 비가 와도 물이 스미지 않으며 통풍이 잘 되어 쉽게 마른다.

얼루기 한 틀에는 10짐 가량 말릴 수 있으며 이를 떨면 세 가마쯤 된다. 곡식 가운데 콩이 제일 더디 말라서 콩을 떨고 나면 ‘가을 일 다 하였다’고 이른다.

콩대는 한 곳에 쌓아두었다가 땔감으로 쓰며, 깍지는 ‘여물우리’에 두고 소 먹이로 쓰는데 봄에 밭 갈 때 먹이기 위하여 따로 갈무리하는 것을 ‘깍지울’이라고 이른다.

③ 기장:기장은 소출이 적고 거두기도 까다로워 많이 심지는 않으나 비를 매어 쓰려고 재배한다. 기장은 옥수수보다 베게 심으며(너비 50∼60㎝) 자구넘이로 녹두를 심는다.

거둘 때에는 낫으로 대를 베며 묶어서 집으로 옮겨온 뒤에 이삭이 달린 목을 쥐고 뒤쪽으로 잎이 모두 떨어지도록 훑어내린다. 이렇게 해서 대가 한움큼쯤 모이면 서로 묶고 이삭에서 30㎝쯤 떨어진 데를 잘라버리고 목만 남겨둔다.

알이 달린 부분은 발로 비벼서 알곡을 떠는데, 그래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땅에 놓고 호미날로 박박 긁어서 떨어낸다. 빈목은 시래기 엮듯이 엮어 매달아 말린다.

④ 조:함경남도 안변에서는 조 이삭이 필 무렵이 되면, 먼저 다랑치(다래끼)를 엮어둔다. 음력 7월경 한발쯤 자란 굵기 5m 정도의 햇싸리나무를 베어 껍질을 벗긴 다음 말려서 묶어두었다가 두말들이 크기로 엮으며 이것을 허리에 둘러 차고 칼로 이삭을 따서 담는다.

하루 5섬쯤 따며 노중태에 넣어 집으로 운반한다. 알갱이는 마당에 펴고 도리깨질을 해서 떨며 이듬해 씨로 삼을 것은 미리 골라 방 천장에 매달아 둔다.

⑤ 옥수수:옥수수는 대 하나씩 손으로 쥐고 낫으로 베어 쓰러뜨린다. 대의 밑부분은 딱딱해서 소가 먹지 못하므로 땅에서 30㎝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자르며 열매는 손으로 꺾어서 딴다. 옥수수 열매는 ‘송이’라고 하며 100송이를 ‘한 접’이라고 부른다.

옥수수 열매는 바소거리(발채)에 담아 집으로 나르며 껍질은 손으로 깐다. 미처 다 까지 못한 것은 4∼6송이씩 잎을 묶어서 행장에 걸어 말린다.

행장은 옥수수를 걸어 말리는 나무틀로서 세발길이(높이 한 발 정도)에 500송이쯤 걸 수 있다. 행장에 걸어 말리는 기간은 한달이며 밤에는 이에 멍석 따위를 덮어 이슬을 가린다.

한편, 껍질을 벗긴 것은 겨릅대로 둥글게 친 ‘강냉이 우리’에 담아 역시 한달쯤 둔다. 이렇게 말린 옥수수를 예전에는 손이나 송곳으로 타 내려 알갱이를 떨었다. 알갱이는 키로 까불어 고른 다음 가마니에 넣어 갈무리하였다. 산간지방의 주민들이 식량으로 삼았던 백옥 대신 5, 6년 전부터 황옥이 나와서 소출이 배로 늘었다.

송이를 잘라낸 빈 옥수수는 자리틀에 올려 엮어서 울타리를 삼기도 하지만, 흔히 소 먹이로 쓴다. 빈 대는 집 근처 밭이나 마당 한구석에 원뿔모양으로 모아 세워두며 필요한 때마다 작두에 썰어 쇠죽을 쓸 때 넣는다.

소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겨우내 쓸 옥수수대를 미리 썰어서 모아두는데 이를 ‘강냉이광’이라고 한다. 평안북도 박천에서는 옥수수를 거두어 껍질을 벗긴 다음 새끼로 이엉처럼 엮어 길게 타래를 지어 말리며 뒤에 손 또는 도리깨로 두드려 알갱이를 떨어낸다.

⑥ 귀리:귀리는 땅에서 10㎝쯤 되는 데를 낫으로 잘라 낸다. 세줌을 한 단이라 하며 귀리 대로 묶어 얼루기에 가린다. 얼루기 한 틀에는 1,000단 가량의 귀리를 말릴 수 있다. 얼루기는 밭가에 설치하며 여기에 두어달 두었다가 지게에 실어 날라 도리깨로 떨어낸다.

한 짐(150단쯤)을 떨면 겉곡 5, 6말이 나오며 이를 ‘두지’에 갈무리한다. 두지는 쪽널로 큰 궤짝처럼 짠 것으로 처마 밑 같은 데에 두는데, 농사가 많은 집에서는 마당에 세우거나 헛간의 한 칸을 따로 쓰기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 일대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둑집’이라고 부른다.

귀리는 필요한 때마다 적당량을 꺼내어 솥에 넣고 한 시간쯤 삶은 다음 방바닥에 깔아 놓고 5일쯤 뒤집어가면서 말리며 이를 다시 찧어 밥을 짓는다.

⑦ 메밀:메밀은 낫으로 베어 곳곳에 무더기를 지어 두는데 한 무더기를 ‘한 광’이라고 부른다. 두 광의 메밀을 떨면 겉곡으로 닷되가 나온다. 메밀은 광을 지어둔 채로 한달쯤 말렸다가 도리깨로 두드려서 알갱이를 떨어낸다.

이를 키에 까불어 갈무리해두었다가 필요한 때마다 적당량을 꺼내어 솥에 삶아 익힌 다음 방에 널어 5일쯤 말리고 나서 찧는다. 겉곡 한 가마에서 알곡 5∼6말이 나온다.

⑧ 보리:보리는 낫으로 베어 그 자리에 1주일쯤 깔아둔 채 말렸다가 거두어 도리깨로 두드려 알갱이를 떨어낸다. 알곡을 가마니에 넣어 갈무리할 때, 복숭아 잎을 함께 넣으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강원도 명주군에서는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 사이에 보리를 거두어 그 날로 마당질을 한다. 보리는 마르면 알갱이를 떨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⑨ 밀:밀은 세 이랑을 단위로 세 사람이 베어나가며 가운데 이랑은 능숙한 사람이 맡는다. 벤 것은 모아서 밀대로 묶어 두었다가 집으로 옮겨서 마당질을 한다.

⑩ 감자:감자는 호미로 흙을 뒤지면서 손으로 감자 포기를 들어올려 캔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극젱이를 끌어서 감자 포기를 들어올리며 사람들은 이의 뒤를 따라가며 감자를 캔다. 집으로 운반한 감자는 껍질을 대강 말린 다음 통가리에 넣어 갈무리한다.

통가리는 쑥대나 싸리 또는 뜸 따위를 새끼로 엮어 둥글게 둘러친 것으로 부엌이나 방 한구석에 세워서 감자뿐만 아니라 고구마도 갈무리한다. 그러나 감자농사가 많은 산간지대에서는 겨울에 어는 것을 막으려고 깊은 움을 파고 갈무리하는데 이를 감자움이라고 한다.

⑪ 참깨:참깨는 낫으로 벤 다음 세줌을 한단으로 묶어서 세발지게 세워 말린다. 이것은 멍석 위에 삼베 홑이불을 깔고 참대를 막대기로 쳐서 알갱이를 떤다. 그러나 들깨의 경우는 멍석 위에서 그대로 떠는 것이 보통이다. 참깨를 떨 때 베홑이불을 까는 것은 들깨에 비하여 매우 비싼 때문이다.

⑫ 목화: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보리를 벤 다음 목화밭을 맨다. 이때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여는데 송이가 완전히 벌어지기 전의 것을 다래라고 한다. 이것은 달콤해서 어린이들이 따 먹으며 가축도 즐겨 먹는다. 그러므로 목화밭 주위에는 들깨나 아주까리를 심어서 가축의 침입을 막는다.

다래의 입이 벌어짐에 따라서 솜은 부풀어올라 숭어리가 된다. 여기에서 거두는 첫물은 질이 매우 좋아서 9새 이상의 무명을 짤 때 쓴다. 목화는 이슬이 마르기 전에 따야 한다. 낮이 되면 잎이 손에 붙어서 따기 어렵다. 이날 부인네들은 나들이 때처럼 옷을 차려 입으며 따 낸 목화는 앞치마에 담는다.

목화는 등상 위에 발을 펴서 널어 말리거나 깨끗하게 거두기 위하여 멍석 뒤에 홑이불을 깔고 이에 펴놓은 다음 뒤집어가며 말리기도 한다. 경상북도 울진에서는 9, 10월이 되어 서속(기장과 조)을 거둔 다음 집과 서낭당에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고 텃고사를 지낸다.

날을 따로 받고 음식을 장만하는 과정 등은 씨를 뿌린 뒤에 올리는 제사와 같으나 이때에는 금줄을 칠 뿐만 아니라 소지까지 올린다. 그리고 “금년 농사 잘 되었으니 골맥이 서낭님 착실히 희망하시고 명년에도 남보다 농사 잘 짓도록 해주시오.”하고 축원한다.

농가에서는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하여 특별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 달 말날[午日]에는 집집마다 곡식으로 술을 빚고 떡을 찌며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님께 올해의 풍년을 감사하는 고사를 올린다. 성주에 모셨던 묵은 곡식도 꺼내어 햇곡식으로 갈아넣으며 집안의 무사태평과 새해의 풍년을 기원한다.

또, 개인뿐만 아니라 온 마을이 하나가 되어 올해의 풍년을 감사하고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리며 하루를 즐기기도 하였다.

옛 기록에 보이는 고구려의 동맹(東盟)이나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그리고 삼한의 제천의식(祭天儀式) 따위는 모두 민간에서 행한 이와 같은 시월행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1∼12(문화재관리국, 1969∼1981)
『한국민속대관』 1∼6(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1982)
『한국의 세시풍속』(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한국농경세시의 연구』(김택규,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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