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목활자본. 1798년(정조 22)에 아들 석주(奭周)가 간행하였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선진(先秦)시대의 글 가운데 선왕의 도와 부합하고 공자의 『춘추』를 해석한 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좌전(左傳)』, 공양고(公羊高)가 지은 『공양전』, 곡량적(穀梁赤)이 지은 『곡량전』 등 세 가지가 꼽힌다.
조선시대에는 그 가운데 『좌전』만이 널리 읽히고 『공양전』과 『곡량전』은 잘 읽히지 않았다. 저자는 이에 학문하는 이가 싫증내지 않고 『공양전』과 『곡량전』을 읽게 하기 위해서, 두 책을 선정, 발췌해 엮었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춘추』가 지어진 지 오래 지나서야 나왔고, 그나마 구전되다가 한대(漢代)에야 비로소 글로 씌어졌기 때문에 『춘추』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또한 한대에 전(傳)을 잃어버렸거나 한나라의 유학자에 의해 번삭된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이 어딘지 알기 어려우므로 홍인모는 다만 문장이 좋은 것만을 골랐다고 한다.
이 때 문장을 자르면 읽는 이가 재미가 없고 문장이 번거롭고 중복되면 싫증내기 쉬우므로, 중복된 부분만 깎아내고 정수만을 골라 이것만으로도 전체를 알 수 있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책머리에 홍석주가 간행하면서 붙인 서문이 있고, 상권에 『공양전』의 노(魯)나라 은공(隱公) 1년의 기사부터 애공(哀公) 14년까지의 기사 가운데 발췌한 것, 하권에 『곡량전』의 노나라 은공 1년에서부터 애공 13년까지의 기사 가운데 발췌한 것을 수록하였다.
서술 방식은 『춘추』의 경(經)을 앞에 싣고 그 아래 전(傳)을 실었는데, 일단 선정된 문장은 자르거나 부연하지 않고 전문을 그대로 실었다. 노나라 은공 1년의 기사와 같이 특수한 것 외는 『공양전』과 『곡량전』의 기사가 중복되지 않도록 선정해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