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촌락사회에서 국법이나 향약(鄕約)의 과실상규(過失相規)에 선행하는 관행이었는데, 집을 헐고 고을에서 축출한 사회적 제재방식의 하나였다. 이러한 관습은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김해 산천조(山川條)에 보면, 도요저(都要渚)와 이웃마을인 마휴촌(馬休村)이라는 어촌에서는 마을 내의 한 집에 음행이 있으면, 주민들이 회의를 하여 이를 마을에서 내쫓는 엄한 제재를 하였다고 한다. 또, 『태종실록』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마을사람들이 예법에 위배된 자를 먼저 제재하고 그 뒤에 관가에 고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이에 의하면, 영남지방에서 득죄자(得罪者)가 있으면 같은 고을 사람들이 임의로 그 집을 헐고 고을에서 내쫓아 버리는 폐습이 있어 이것이 다른 지방에까지 전파되므로, 이러한 관습을 따르는 자에 대하여 무단율(武斷律: 승낙을 얻지 않고 임의로 행함)로 체포할 것을 사헌부에서 청하여 왕이 이를 따랐다고 한다.
이익(李瀷)도 『성호사설』에서 영남지방의 풍속 가운데 출향의 관습이 성행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법으로 이를 금지시키는 것이 정교(政敎)를 바로잡는 방법 중의 하나임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촌락사회에서 마을 주민들 간의 상호의존관계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지역집단의 정당한 성원이라는 인정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출향에 의해 낯선 마을에 가서 살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사회적 기반을 약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촌락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출향과 같은 관습이 효율적인 사회제재의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인 경제·사회 제도의 발전에 따라 인구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지역집단으로서의 촌락의 자율적 성격이 약화되면서 퇴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