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종의 아우인 현오국사(玄悟國師)으로부터 득도(得度)하였다. 1178년 흥왕사(興王寺)에 있을 때 승려들과 역모를 모의한다는 밀고가 있어 조사를 받았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1180년에 태후가 유종(乳腫)이 생겨 그를 불러 시탕(侍湯)하게 하였다.
그 때 궁녀들과 난행(亂行)하고 또 공주와 사통한다는 추문이 외부에 자자하였으므로 우사간(右司諫) 최선(崔詵)이 소를 올려 간하자 왕은 형제간을 이간한다고 하여 최선을 파면하였다. 그 뒤 직언을 하는 자는 없어지고 그에게 아부하여 공공연히 뇌물을 주고받게 되었다.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