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1책 44장. 편자 윤현구와 윤용구는 집안 형제로 특히 윤용구(1853∼1939)는 장악원제조를 지낸바 있으며, 서로 음율에 관하여 자주 토론하였다고 한다.
윤용구는 중국에서 구한 칠현금과 악보를 참고하여 이 악기로 우리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십수개월간 노력하여 이 악보를 완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거문고 명인 고익상(高益相)의 도움이 있었다.
기보방법은 정간보를 활용하여 시가(時價)를 나타내었는데, 매 1행을 3개의 소행으로 나누어 제1소행에는 현명(絃名)을 숫자로 적고, 그 아래에 율명(律名)을 한자로 적었으며, 제2소행에는 해당하는 음의 육보(肉譜)를 한글로 적었다. 제3소행에는 휘(徽)를 누르는 왼손의 손가락 번호를 한자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악곡별로 각 장(章)의 첫 행에는 장구장단을 부호로 표기하였다. 내용은 윤용구의 ‘칠현금보서’에 이어 칠현금을 도해한 ‘휘금식’, 조현법이 있으며, 악곡은 풍류방에서 연주되던 기악곡이 수록되었다.
수록된 악곡은 본령산에서 군악에 이르는 영산회상 전곡과 뒷풍류, 도드리계통 악곡 및 여민락(2∼7장), 우조와 계면조의 다스름 등이다. 윤용구가 편찬한 악보 중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가 성악곡인 가곡을 수록하고 있음에 비하여 이 악보는 기악곡을 수록하여 칠현금악보로 한 짝을 이룬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