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6년에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유인우(柳仁雨)가 쌍성(雙城)을 함락시키자, 쌍성천호(雙城千戶)로서 쌍성의 총관(摠管) 조소생(趙小生)과 함께 도주하여 고려 조정을 괴롭혔다. 1358년에 조소생과 함께 해양(海陽: 길주)으로 도망하여 웅거하니 해양인(海陽人) 완자불화(完者不花)가 병졸 1,800명을 거느리고 내투(來投)하였다.
1362년에 나하추(納合出)가 병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조소생 등과 함께 홍원(洪原)의 달단동(韃靼洞)에 주둔하니, 이성계(李成桂)가 덕산동(德山洞) 원평(院平)에서 격퇴시켰다. 같은 해 7월에 여진의 다루가치[達魯花赤], 소음산총관(所音山摠管) 불화(不花)에 의해서 조소생 및 그 가족, 휘하 50여 명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