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단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강훈 (광복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연원 및 변천

1919년 3·1운동이 발발한 뒤 단장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김동준(金東俊) 등이 장백현(長白縣)·임강현(臨江縣)을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단원은 조인관·정삼승·김동준·최승호(崔承浩)·주택룡(朱澤龍)·김병륜(金炳倫)·임석우(林錫禹)·한원갑(韓元甲)·원성주(元成柱)·박대성(朴大成)·김계필(金啓弼)·한병수(韓炳洙) 등이며, 총단원수는 2,000여명에 이르렀다.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로 입국시켜 일제에 대한 항쟁을 전개하면서 각지에 지단(支團)을 설치하였다.

1921년 8월 20여 명의 단원들이 후창군 강변에서 후창경찰대와 격전을 전개하여 지단장 한병수 등 6명의 단원이 전사하였으며, 특무조장 김계필 등의 1대는 장진군 산악지대에서 적의 경찰대와 여러 차례에 걸친 전투를 벌여 적을 섬멸하였다. 같은 해 9월 의용대 1대가 신흥군 신령(新嶺)에서 3명을 사살하였다.

1921년 6월부터 장백현을 근거로 활약하던 군비단·광복단·흥업단(興業團)·대진단(大震團) 등 무장단체의 합동작전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단체와 연합하여 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 총단의 이창운(李昌云)은 연합회의 사찰이라는 직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 뒤 이 연합회는 1921년 10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재편되었고, 1922년 4월 광정단(匡正團)으로 발전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유공자공훈록』5(국가보훈처, 1988)

  • - 『독립운동사』3·4·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1972·1973)

  •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東文社書店, 194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