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서관

  • 역사
  • 단체
  • 대한제국기
1908년 5월 이승훈(李昇薰)·안태국(安泰國) 등이 평양에서 서적이나 유인물의 출판과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한 서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기영 (세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08년 5월 이승훈(李昇薰)·안태국(安泰國) 등이 평양에서 서적이나 유인물의 출판과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한 서점.

내용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 등이 1907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결성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 조직의 산하기관 구실을 하였으며, 신민회원들의 연락장소 및 집회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

본래 신민회에서는 평양 뿐만 아니라 전국에 태극서관의 지점을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1910년 8월 서울에 제2태극서관을 개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서점의 운영은 안태국이 책임을 지고 있었으나, 그가 서울의 지점을 운영하게 되자 송종원(宋鍾源)·김근형(金根瀅)·이덕환(李德煥) 등이 관여하였다.

이 서관에서는 직접 서적의 출판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최남선(崔南善)이 주관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간행서적과 『소년(少年)』 잡지, 그리고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등의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울러 서적판매 뿐 아니라 측량기구와 학용품 및 과수묘목도 판매하였다. 이 서관은 신지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서적의 공급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상업적 이윤 추구에는 관심이 없던 비상업적 기관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1년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신민회 회원들이 일제에 검거되자, 서점도 폐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 「동오안태국의 민족운동연구」(홍영기, 『국사관논총』40, 1992)

  • - 「신민회와 남강의 경제활동연구」(윤경로, 『남강이승훈과 민족운동』, 남강문화재단출판부, 1988)

  • - 「신민회의 창건과 그 국권회부운동」하(신용하, 『한국학보』9,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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