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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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5월 이승훈(李昇薰) · 안태국(安泰國) 등이 평양에서 서적이나 유인물의 출판과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한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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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8년 5월 이승훈(李昇薰) · 안태국(安泰國) 등이 평양에서 서적이나 유인물의 출판과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한 서점.
내용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 등이 1907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결성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 조직의 산하기관 구실을 하였으며, 신민회원들의 연락장소 및 집회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

본래 신민회에서는 평양 뿐만 아니라 전국에 태극서관의 지점을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1910년 8월 서울에 제2태극서관을 개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서점의 운영은 안태국이 책임을 지고 있었으나, 그가 서울의 지점을 운영하게 되자 송종원(宋鍾源)·김근형(金根瀅)·이덕환(李德煥) 등이 관여하였다.

이 서관에서는 직접 서적의 출판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최남선(崔南善)이 주관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간행서적과 『소년(少年)』 잡지, 그리고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등의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울러 서적판매 뿐 아니라 측량기구와 학용품 및 과수묘목도 판매하였다. 이 서관은 신지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서적의 공급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상업적 이윤 추구에는 관심이 없던 비상업적 기관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1년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신민회 회원들이 일제에 검거되자, 서점도 폐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동오안태국의 민족운동연구」(홍영기, 『국사관논총』40, 1992)
「신민회와 남강의 경제활동연구」(윤경로, 『남강이승훈과 민족운동』, 남강문화재단출판부, 1988)
「신민회의 창건과 그 국권회부운동」하(신용하, 『한국학보』9, 1977)
집필자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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