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 등이 1907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결성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 조직의 산하기관 구실을 하였으며, 신민회원들의 연락장소 및 집회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
본래 신민회에서는 평양 뿐만 아니라 전국에 태극서관의 지점을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1910년 8월 서울에 제2태극서관을 개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서점의 운영은 안태국이 책임을 지고 있었으나, 그가 서울의 지점을 운영하게 되자 송종원(宋鍾源)·김근형(金根瀅)·이덕환(李德煥) 등이 관여하였다.
이 서관에서는 직접 서적의 출판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최남선(崔南善)이 주관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간행서적과 『소년(少年)』 잡지, 그리고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등의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울러 서적판매 뿐 아니라 측량기구와 학용품 및 과수묘목도 판매하였다. 이 서관은 신지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서적의 공급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상업적 이윤 추구에는 관심이 없던 비상업적 기관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1년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신민회 회원들이 일제에 검거되자, 서점도 폐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