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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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그림이나 문자 따위를 넣어 끗수를 표시한 종이조각을 가지고 승부를 가리는 성인남자놀이. 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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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여러 가지 그림이나 문자 따위를 넣어 끗수를 표시한 종이조각을 가지고 승부를 가리는 성인남자놀이. 노름.
내용

남자들의 실내오락의 하나이다. 두꺼운 종이로 작은 손가락 너비 만하게 15㎝ 쯤 되도록 만들어 그 한 면에 인물·새·짐승·벌레·물고기 등의 그림이나 글귀를 적어 끗수를 표하고, 기름으로 결은 것인데, 60장 혹은 80장이 한 벌이나 40장을 가지고도 하며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 투전을 ‘投箋(투전)’이라고도 쓰는데, 이에 대한 기록으로는 조선 정조 때 학자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 京都雜志≫ 도희조(賭戱條)에 투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고,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희구(戱具) 변증설에는 17세기 조선 숙종 때 역관인 장현(張炫)이 중국의 노는 법을 고쳐 만든 것이라 하였다.

팔목(八目) 80장을 ‘수투전(數鬪牋)’, 육목(六目) 60장을 ‘두타(頭打)’라 한다 하였으니, 이로 미루어보아 우리 나라의 수투전은 장현이 중국 명나라의 마조패(馬弔牌)를 간략화한 것으로서,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로 간단하게 되어 오늘날의 40엽(葉) 투전이 된 것 같다.

그런데 투전은 영조 초기부터 크게 퍼져서, 사람들에게 큰 폐해를 입혔으며 관아에서 아무리 단속을 하여도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노름꾼들은 상가에 대한 경계가 소홀한 것을 이용하여 생판 모르는 집의 초상에도 문상객으로 가장하여 들어가 투전판을 벌이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투전은 이에 쓰는 투전 목의 수나 참가인원 또는 내용에 따라 ‘돌려대기’·‘동동이’·‘가구’·‘우등뽑기’ 따위로 나뉘며 한가지 방법에도 몇 가지 세목이 있다. 가령 ‘가구’ 중에도 다섯끗 석장으로 15끗 내는 것을 ‘대방신주’, 1과 4로 되는 것을 ‘여사’, 2와 1로 되는 것을 ‘뺑뺑이’라고 한다.

앞의 방법 중에 돌려대기는 가장 널리 놀려지며 40장의 투전 목을 쓴다. 선수가 판꾼 다섯 사람에게 한 장씩 떼어 모두 5장씩 나누어주며 판꾼들은 각기 3장을 모아서 10, 20, 30을 만들어 짓고 나서, 나머지 2장으로 이루어지는 수에 따라 승부를 결정한다.

만약 3장을 모아도 지을 수 없는 사람은 실격하며 2장의 숫자가 같으면 이를 ‘땡’이라 한다. 이 중에는 ‘장땡(10의 숫자가 2장인 경우)’이 가장 높으며 9땡, 8땡……의 순서로 낮아진다. 땡이 아닌 경우에는 2장을 합한 것의 한자리수가 9가 되면 갑오라 하여 가장 높고 9, 8, 7, 6, 5……0의 차례로 내려간다.

그리고 갑오가 되는 수 가운데 1과 8은 ‘알팔’, 2와 7은 ‘비칠’이라 하고 5가 되는 수 중에 1과 4는 ‘비사’라고 부른다.

2장을 더한 수가 10처럼 한자리수의 끝이 0이 되는 경우에는, 이를 ‘무대’라고 하여 제일 낮은 끗수로 친다. ‘같잖은 투전에 돈만 잃었다’라는 속담의 표현 그대로 재물을 걸로 하는 투전판은 한국인에게 패가망신하는 장소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참고문헌

「투호」(최상수, 『서울육백년사』 제3권, 서울특별시,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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