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 삼장보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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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파계사 성전암 삼장보살도
대구 파계사 성전암 삼장보살도
회화
작품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파계사 원통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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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파계사 원통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내용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파계사 원통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1707년(숙종 33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1㎝, 가로 291㎝. 오른쪽〔向左〕에 지장보살(地藏菩薩)과 그 권속, 중앙에 천장보살(天藏菩薩)과 두 협시보살 및 권속 그리고 왼쪽〔向右〕에 지지보살(持地菩薩)과 여러 권속을 평행선상에 배열하였다.

이러한 평행 배열 구도는 천장보살을 정점으로 오른쪽에 지장, 왼쪽에 지지보살을 삼각형으로 구성하는 구도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구도이다. 18세기에 특히 널리 사용된 것 같다. 그러나 같은 구도이면서도 화면 가득히 많은 권속들을 배열하여 전형적인 군도 형식을 보여 주는 18세기 중기 이후의 불화들, 예를 들어 은해사삼장보살도(1755), 신륵사삼장보살도(1758), 천은사삼장보살도(1776) 및 쌍계사삼장보살도(1781) 등과는 달리, 적은 인물을 배열하여 비교적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세 보살은 각기 높은 수미단 위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였다. 천장보살은 설법인(說法印), 지지보살은 경책(經冊)을 들었으며 지장보살은 보주(寶珠)와 석장(錫杖 : 중이 짚는 지팡이)을 들었다. 둥글면서 약간 수척한 느낌이 드는 얼굴에, 이목구비가 균형 있게 표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활형의 눈썹, 가늘고 작은 입, 형식화된 턱수염·콧수염 등은 역시 당시 불화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위로 갈수록 점점 작게 표현하여 각기 세 보살에게로 보는 이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인물들의 표현은 그 소임과 지위에 따라 특징 있게 묘사되었으나 대체로 주존(主尊)들의 얼굴과 닮아 있다. 그리고 화면의 윗부분과 인물 사이에는 색색의 구름이 장식되어 있다. 이들 구름 주위를 다시 밝은 색으로 칠하여 마치 고려시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서와 같은 조광 효과(照光效果)를 내고 있다.

능숙하면서도 형식화되지 않은 형태 및 필선은 화려한 색채와 함께 이 불화의 격을 높여준다. 아울러 시대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녹색·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밝고 명랑한 색채는 18세기 초기의 특유한 색채 감각을 잘 보여 준다.

천장보살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들이 입고 있는 귀갑문(龜甲文)의 옷을 금니(金泥)로 채색하여 한결 밝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밖에 분홍빛·주홍빛의 구름과 청색의 하늘빛 또한 이 불화에 화려함을 더해 주는 한 요소이다.

이 불화는 현재 조사된 조선 후기의 삼장탱화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16세기 말기의 삼장보살도 즉, 염불암삼장보살도(1588년), 일본 연명사소장 삼장보살도(1591년)의 형식을 계승하면서 18세기에 다수 조성된 삼장보살화의 형식과 양식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그 중요성이 높이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불화(佛畵)의 연구』(홍윤식, 원광대학교출판국, 1980)
『한국의 미 16-조선불화-』(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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