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fen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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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대회 / 펜싱
서울올림픽대회 / 펜싱
체육
개념
검을 쥔 두명의 경기자가 규정에 따라 상대방의 몸을 찌르거나 베서 승패를 겨루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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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검을 쥔 두명의 경기자가 규정에 따라 상대방의 몸을 찌르거나 베서 승패를 겨루는 경기.
내용

펜싱은 칼의 종류에 따라 플뢰레(fleuret)·에페(epee)·사브르(sabre) 등 세 종류가 있으며, 각기 칼의 모양이 다르다. 흰 유니폼과 날렵한 동작, 예의준수 등은 예술이라고 할 만큼 화려하며, 기사도정신과 민첩성·정신통일 등을 길러주는 스포츠이다.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으며, 경기용어는 모두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경기시간은 플러레와 사브르는 6분간씩 5회를 하며, 에페는 5분간씩 3회 또는 10분간씩 5회를 한다. 선수는 중앙선에서 2m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가 준비가 되면 주심의 ‘안가드르(준비자세)’라는 구령에 따라 칼을 겨누고, ‘플레이(준비완료)’라는 구령에 ‘위(예, 좋다)’라는 대답을 하면 ‘알레(시작)’라는 구령으로 시합을 시작한다.

경기방법은 플뢰레는 표적에 칼을 찌르기만 하는 것으로, 앞면은 칼라 위 끝부터 사타구니 부분까지, 측면은 허리뼈선과 사타구니 부분의 교차선까지가 유효면이다. 에페는 찌르는 유효면이 전신이며, 상대의 전신 어느 곳이나 먼저 찌르는 쪽이 이긴다. 6분에 5점을 먼저 얻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근대5종경기 때는 3분이다.

사브르는 정하여진 유효면을 찌르거나 자르는 두 기술을 사용하는데, 유효면은 머리·팔·몸통의 전면이다. 경기중 경계선을 두발로 넘어서면 플뢰레는 1m, 에페와 사브르는 2m를 후퇴시키며, 뒤쪽 발이 경고선에 닿으면 경고를 받는다.

경고 후 뒤쪽 경계선을 두발로 넘으면 벌로 1개를 빼앗긴다. 심판은 모두 전기심판기를 이용하므로 주심 1명과 보조원 1명, 전기심판기가 불가능할 때에는 주심 1명과 부심 4명이 필요하다. 단, 사브르는 시각에 의하여 판정하므로 주심 1명과 부심 1명으로 한다.

채점은 승리가 2점, 비겼을 때 1점, 패하였을 때 0점으로 한다. 펜싱은 피스트(piste)라고 불리는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는데, 경기장의 너비는 1.8∼2m이고 길이는 플뢰레가 14m, 에페가 18m, 사브르가 24m이다. 장비로는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마스크와 가슴막이가 있으며 목의 보호를 위하여 가죽을 댄다. 또한 손에는 장갑을 끼고 흰 스타킹과 가죽신발을 신는다. 유니폼은 반드시 흰색이어야 하며, 전기심판기를 사용할 경우 보통 자켓 위에 금속실로 엮은 메달자켓을 입는다.

펜싱의 역사는 칼의 역사와 같이 오래되었으나, 현대적 펜싱경기의 발전은 1536년에 미켈레 마르초, 1553년에 카밀로 아그리파 등이 경기규칙을 정하여 무거운 전투양식의 장비를 제거하고 칼을 가볍게 하며 베기 기술에 찌르고 막고 반격하는 기술을 체계화한 때부터이다. 특히 1567년 프랑스의 샤를 2세에 의하여 이 규칙에 따른 시합이 허용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17세기 초에 크리스티앙 4세에 의하여 현대 펜싱의 기초가 확립되었으며, 이후 18세기에는 기술적인 펜싱이 성립되었다. 18세기에는 상류사회 교양의 하나로 실전적이고도 기술적인 펜싱이 요구되었다. 그 결과 칼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승부 때문에 칼 끝을 사용하여 찌르기를 하는 등 민첩하고 섬세한 펜싱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진짜 칼을 사용하였으므로 유혈사고가 잦아, 그 뒤 무기 사용이 제한되고 1850년 라보에세레가 마스크를 발명함으로써 오늘날의 펜싱경기로 발전하는 직접적 동기가 되었다. 1896년 제1회 올림픽대회 때부터 플뢰레와 사브르가 정식종목으로 실시되었다. 1900년에는 에페 종목이 추가되고,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 때부터는 전 종목을 실시하였다.

1913년 11월에 국제펜싱연맹을 결성하고 플뢰레·에페·사브르 등의 경기규칙을 통일하였으며, 1916년에는 전기심판기가 사용되었고, 1934년에는 에페, 1955년에는 플뢰레에서 전기장치의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1921년에는 파리에서 제1회 세계펜싱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뒤 매년 세계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펜싱이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46년 6월 김창환(金昌煥)·윤항섭(尹恒燮)·조득준(趙得俊) 등이 고려펜싱구락부를 만들고 서울 세기사운동구점 옥상에서 희망자를 모아 펜싱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최초이다. 1947년 1월에 유근석(柳根碩)·장태형(張泰瀅)·최경달(崔敬達) 등의 후원으로 조선펜싱연맹(대한펜싱협회의 전신)을 조직하였다. 1949년에는 대한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에 펜싱부를 설치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중단되었고, 1958년 2월 한국체육관에 펜싱부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선수 양성을 하게 되었다.

1960년 8월 로마올림픽대회 때 국제펜싱연맹에 가입하였으며, 1961년 대한펜싱연맹이 대한체육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1972년에 아시아펜싱연맹에 가입하였고, 1962년 제43회전국체육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4년의 동경올림픽대회와 1967년의 동경유니버시아드대회에 선수를 파견하여 국제경기의 경험을 쌓았으며, 1974년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최초로 플뢰레 종목에서 김정일(金正一)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7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플뢰레 단체전에서 국제대회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에페와 사브르 종목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이일희(李日熙)가 에페 개인전에서 2관왕이 되었으며, 플뢰레에서 고낙춘(高樂春)이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에페 단체와 플뢰레 단체에서도 우승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5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고 쾌거를 올렸다.

국내경기대회로는 대통령배쟁탈 전국남녀개인선수권대회, 체육부장관배쟁탈 전국학생펜싱선수권대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회장배쟁탈 전국남녀개인종별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한편 1999년에는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하여, 한국 펜싱의 비약적인 발전을 꾀하였다.

참고문헌

『체육년감』(대한체육회, 1998)
『대한체육회70년사』(대한체육회, 1990)
『대한펜싱협회자료』(대한펜싱협회, 198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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