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평양기성도는 조선시대 평양부 내외의 실제 경관을 담은 그림이다. 평양은 기성(箕城)·낙랑(樂浪)·서경(西京)·서도(西都) 등 다양한 명칭으로 지칭되었다. 16세기 후반부터 기자조선에 대한 논의가 증대되면서 ‘기성도’로 지칭하는 관습이 생겼다. 18세기 평양에서 상업과 무역이 성행함에 따라 그 수요도 증가하여 20세기 초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평양의 산·하천·동굴·섬·기암·폭포 등의 천연 경관과 공적 시설물 및 고적·누대·사찰 등 역사 경관과 문화 경관이 조합되어 있다.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 개인 소장품 등으로 전하는 작품이 상당히 많다.
정의
조선시대 평양부 내외의 실제 경관을 담은 그림. 평양도·평양성도·기성도·서경도.
개설
문헌 기록에 의하면, 평양에서 가진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이 이미 15세기에 그려졌다. 그러나 명승명소(名勝名所)와 같은 경관 그 자체를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실경 산수화는 17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나아가 양란의 피해 복구가 마무리되고 대내외 정세가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18세기에는 상업과 무역의 성행에 힘입어 평양이 한양 다음가는 도시로 부상하였고 평양기성도에 대한 수요도 동반 상승하였다. 당시 평양은 재화가 풍성하고 풍류가 넘치는 유락(遊樂)의 도시로 이미지화되어 세간에 평양을 동경하는 풍조가 형성되었다. 또한 중앙으로 진출하여 명성을 날린 화가를 배출할 정도로 지역 출신 화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그와 같은 분위기는 다채로운 형식과 내용의 평양기성도가 제작, 유통되는 데 일조하였다.
연원 및 변천
17세기 말에는 전국 각지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명승이 정착되었고 18세기에 접어들면 진경 산수화(眞景山水畵)가 중앙 화단의 주요 장르로 부상하였다. 하지만 평양의 경관을 재현하는 작업은 금강산과 관동 명승 등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의 명승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 18세기 후반의 기록이나 작품은 보다 구체적이어서 그 즈음 수요가 증가하고 제작이 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왕실을 비롯해 문인 관료들의 관심이 증대되면서 관서 명승도(關西名勝圖) 유형에 포함된 사례는 물론이고 전경도(全景圖)와 특정 구역을 근접 포착한 명승도(名勝圖) 등이 병풍과 화첩, 족자 등 여러 가지 장황 형식으로 제작되고 감상되었다. 특히 작자 미상의 「관서명구첩」과 「관서십경도」, 평양성의 전경을 조망한 송암미술관 소장 「기성도」 8폭 병풍, 「평양팔영(平壤八詠)」에 연원을 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평양팔경도」의 내용과 화풍이 상통하여 18세기 말~19세기 초 다양한 형식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려졌음이 드러난다.
19세기로 넘어가면서 평양기성도의 수요와 제작은 더욱 늘어났다. 누차 평안도 소재 누정이 차비대령화원 녹취재의 화제로 출제되었는가 하면 병풍 계열의 평양도가 인기리에 양산되었음을 관련 기록과 유전작이 증명해 준다. 이는 관서 명승이 중앙 화단에서도 익숙한 화제로 정착하였음을 보여 주는데, 당시 현지에 파견되었던 군관 화사들의 활약도 한몫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목판본이 유포되는 등 병풍 형식의 기성도가 대대적으로 유행하였고, 때때로 주문자의 관력(官歷)을 현시하는 행렬이나 민속 놀이 장면이 삽입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국내외 정세의 변동이 심하였지만 실경 산수화를 주문하고 향유하는 서화 취미와 관습은 민간 계층으로 확대되었고 평양기성도 역시 20세기 초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내용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평양지(平壤志)』(윤두수)
- 『평양속지(平壤續志)』(윤유)
- 『기성도병』(서울역사박물관 편, 2019)
- 『조선시대 평안도 함경도 실경 산수화』(박정애,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4)
- 「조선 후기 평양 명승도 연구─《평양 팔경도》를 중심으로」(박정애, 『민족문화』 39, 2012)
- 「18~19세기 기성도 병풍 연구」(박정애, 『고문화』 7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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