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원(長水院)의 동쪽으로 30여 마을이 있는 소련산(小連山)의 남쪽지맥의 평탄한 지역에 있다. 주위에는 20여 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사되었다.
고분은 한 변의 길이가 29.4m인 방형 기단 위에 세운 방대형의 봉토분으로서 높이는 기단 윗부분이 7.8m이다. 현실은 방형에 가깝다. 천장은 네 벽에 창방(昌枋)을 낸 편편한 3각굄으로서 꼭대기를 2층으로 받치고 있다.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현실의 규모는 세로 302.7㎝, 가로 272.4㎝, 높이 345㎝이다. 네 벽과 천장은 회를 섞어 칠하였다. 현실 내에는 오른쪽 벽에 접해서 넓은 단이 만들어져 있고, 또한 왼쪽 벽에 접해서 합장용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은 돌을 앞뒤로 쌓아두었다. 이것들은 석단과 같이 회칠을 하였다. 현실 입구에는 작은 문이 있다. 상부 좌우의 축혈(軸穴)은 연도의 남면보다 안으로 들어가 그 간격은 하부 좌우 축혈 사이의 협소한 간격과 일치되지 않는다.
연도 중앙부에는 폐쇄(閉塞)을 이루는 곳이 있고, 입구에는 판석을 세웠으며, 그 외에는 돌을 쌓아 막았다. 바닥은 앞부분에서 점차 낮아졌다. 연도의 전체 길이는 1,281.6㎝로서 현실에 접하는 부분은 522.6㎝이다. 천장석까지의 높이는 대략 170.4㎝에서 199.5㎝이다.
현실 내에서는 석침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고구려에 목관을 사용해 유해를 바로 석침 위에 안치시키는 습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도에서는 횡단면이 방형에 가까운 도금된 동촉(銅鏃)이 발견되었다.
현실과 연도에서는 채색된 연화문(蓮花文)이 그려진 도기파편이 발견되었다. 연화문은 원숙된 형태가 아니며 중국 육조의 영향이 보인다. 이로써 고구려는 6세기경에 이미 요업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