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싸움’·‘초당싸움’이라고도 한다. 촌락사회는 일정한 경계 표시로 영역화되어 있고, 그 성원들은 자기 영역 고유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이라는 사회적 집단을 방어할 의무를 갖는다. 풀시비는 영역방어로부터 일어나는 대표적인 예이다.
촌락사회에서 가축(소)을 사육하거나 퇴비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 초지(草地)이다. 촌락성원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풀이 많은 산, 즉 초지에 소를 방목하여 사육하고 퇴비용 풀이나 소에게 먹일 건초감을 채취한다. 이 때 남의 마을 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따른다. 혹시 남의 영역을 침해했을 때 시비가 일어나니, 이것이 풀시비 혹은 초당싸움이라고 하는 다툼이다.
풀시비가 영역권의 침해와 이에 대한 방어의 대립적 관념에서 비롯되는 만큼 그 제재와 후유증도 심했던 것 같다. 실제로 남의 마을 소가 영역을 침해하면 소를 잡아서 나무에 고삐를 매어 두거나, 낫으로 소의 ‘코거나리(소를 쉽게 유도하기 위해서 코에 구멍을 내서 꿰어 다는 활 모양의 막대기. 여기에 소고삐를 달아 몰고 다님)’나 목태(목사리)를 끊어 피해를 입힌다고 한다.
그리고 영역을 침해하여 풀을 베다가 발각되면 풀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낫과 지게까지도 빼앗긴다. 풀시비가 이웃하는 마을 사이에 벌어지면 서로 경계하게 되고, 급기야는 패싸움이 일어나는 등 이웃간에 심한 갈등이 촉발되곤 한다. 전통적으로 이웃마을과의 사이에 내재하는 배타적인 감정이 풀시비를 비롯한 영역권 시비의 배경을 이룬다고 하겠다.
촌락사회 성원들은 “풀시비로 이웃간의 의(義)에는 금이 가도 자기 마을 사람은 공동체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강원도의 산촌 일대와 경상도 영천·합천 지방에서 지금도 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