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잡히는 마을 ( 잡히는 마을)

현대문학
작품
최정희(崔貞熙)가 지은 단편소설.
정의
최정희(崔貞熙)가 지은 단편소설.
개설

1947년 9월『백민(白民)』에 발표하였다.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내용

닭이 비명을 지르며 또 족제비에게 물려갔다. 닭을 물어가는 족제비에 대한 증오는 닭집을 끝내 완성시켜 주지 않은 목수 영감에게로, 끝내는 목수 영감이 가 있는 서흥수 회갑잔치로 돌려졌다. 서흥수네 회갑잔치가 열리고 있는 강가에서는 아직도 풍류소리가 요란하다. 몽둥이를 들고 가 그 놀이터를 산산이 쳐부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 할 지경이다.

그들과는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서흥수네의 누구와도 안면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곳으로 온 이후(광복 이전)부터 서흥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서흥수네는 양력설을 지내기 위하여 엄청난 준비를 하였다. 많은 음식물로 그들은 총독부 관리에 이어, 이곳 주재소 및 면소의 관리까지 잘 먹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잘 사는 서흥수는 성적이 부실한 소작인은 징용을 보내고, 충실한 사람은 농업지도원이 되게 하였으며, 막내아들은 학병에 가지도 않았다. 서흥수가 마음먹어서 안 되는 일이란 없었다.

광복이 되었으나 이곳 주민들의 관심은 정국의 추이에 쏠렸다. 그러는 사이, 토지 추수의 3·1제가 발표되었다. 소작인이라면 누구나 기뻐할 만한 일이었으나 약삭빠른 몇 사람은 서흥수를 찾아가서 남들은 어쨌든 전대로 해드리겠다고 자청하기도 하였다. 서흥수는 일제시대보다 더 힘들이지 않고 부를 축적하여 나갈 수 있었다.

닭장 짓는 일을 맡은 목수 영감에게는 사정도 많았다. 선금을 주었기 때문인지 공사는 지지부진이었다. 거기에 서흥수네 회갑잔치까지 끼였으니 닭의 피해만 늘 뿐이었다. 회갑잔치에 가 있던 목수 영감이 새파랗게 질려서 달려 왔다. 서흥수의 아들이 호화찬란하게 차려놓은 서흥수의 큰 회갑 상을 부숴 버렸기 때문에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목수 영감을 위로하면서 오래지 않아 가난하고 우매한 농민들이 잘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흉가」 이후의 몇 작품이 여성의 불행한 운명을 그리되 개인의 차원에서만 바라본 것이라면, 이 작품은 소작인 대 지주 관계라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소설사』(이재선, 홍성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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