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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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지형에 인문적인 의미를 더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석하려는 풍수지리설에 관한 설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풍수설화는 자연 지형에 인문적인 의미를 더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석하려는 풍수지리설에 관한 설화이다. 지형 설명, 지사의 행위, 그 지형으로 인한 성공·실패 등 풍수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다. 풍수설은 삼국시대 말기에 득세하여 조선 말기까지 이해관계에 크게 작용하였다. 풍수설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해 각 지역에서는 많은 풍수설화가 채록되고 있다. 풍수설화의 내용은 소재거리, 풍수의 능력, 응험과 효과, 풍수 형성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풍수설화는 한국인의 행복관·보상심리·조상 숭배 등 삶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담고 있다.

목차
정의
자연 지형에 인문적인 의미를 더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석하려는 풍수지리설에 관한 설화.
내용

지형 설명, 풍수 곧 지사(地師)의 행위, 그 지형으로 인한 여러 모습의 결과 곧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 · 중국 · 일본에서 발달한 풍수지리설은 한국에서 더욱 독특한 성격으로 나타난다. 풍수설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말기에 득세하여 조선 말기까지 이해관계에 있어 크게 작용하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조상의 무덤을 잘 쓰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각 지역에서 많은 풍수설화를 채록할 수 있는 점에서 풍수설의 강인한 생명력을 알 수 있다.

풍수설화의 내용을 편의상 구분하면, ① 소재거리, ② 풍수의 능력, ③ 응험(應驗)과 효과, ④ 풍수 형성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소재거리: 소재의 규모에 따라 우리나라 전체와 특정 도읍이나 마을, 산 사람의 집인 양택(陽宅), 그리고 죽은 사람 편인 왕의 능묘(陵墓), 국가유공자의 국립묘지( 국립서울현충원 등), 개인의 묘지로 나눌 수 있다.

한반도를 토끼 모양이라고 한 것은 일본인이 식민지정책으로 이용한 잘못된 설이고 원래 한반도는 호랑이 모양이라 하였다. 그 증거로 경상북도 영일군의 구룡반도를 호미(虎尾)라 한다.

그런데 이 호미등(虎尾嶝)에 일본인이 1903년 장기갑(長鬐岬) 등대를 세우자, 호랑이 꼬리에 불을 켜면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어, 등대가 넘어져 부근이 불바다가 되고 우리나라가 고통에 빠진다고 주민이 한사코 반대하였는데, 급기야는 일본인 등대수 가족이 괴한의 손에 몰살당하는 일이 생겼다 한다.

왕릉을 잡은 풍수는 원칙적으로 죽이는 것이 관례였으나 너무 잔인한 일이라 하여 “저 풍수 잡아라!”고 소리만 치고 끝내기도 하였다.

고려를 나타내는 개성의 ‘송악산신’이나 근세 조선을 나타내는 ‘삼각산신’, 서울이 되려고 부지런히 달려오다(또는 돌다) 여자에게 들켜 실패한 ‘산이동(山移動)설화’, 서울의 진산(鎭山)이 되려고 달려와 보니 다른 산이 이미 자리 잡고 있어서 실패하였다는 ‘실패한 산설화’ 등은 모두 국가나 국도(國都)에 관한 풍수설화의 예이다.

마을 풍수의 대표적인 예는 그 고장이 배 모양으로 되어 있어 돛대를 세우고, 우물을 깊이 파서는 안 된다는 행주형(行舟型) 전설을 들 수 있다. 적선을 해서 복 받는 집터를 얻었다든가, 못 속의 용을 쫓아낸 명당 터에 절을 세웠다는 경주 황룡사(黃龍寺)의 창건설화〔逐龍建寺說話〕 등은 양택 소재에 관한 풍수설화이다.

② 풍수의 능력: 명당을 잘 찾는 풍수, 곧 지사의 신통력에 관한 설화가 있으니, 남사고(南師古) · 두자충 · 박상옥 · 이서구 · 호종달 · 진묵대사(震默大師) 등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천하의 명풍수라도 시기심 · 성급 · 잘못판단 · 교만 · 공부미숙 등으로 실패했다는 실수담(예컨대, 남사고가 자기 어머니를 명당에 쓰지 못했다는 九蛇之地 설화)이 있고, 전혀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명당 터를 잡아 칭찬을 받았다는 우연풍수설화도 있다.

③ 응험과 효과: 명당 터에 부모를 모시고 즉시 효과를 본 임시발복형(臨時發福型)이 있는가하면, 먼 후손이 명당 덕을 보는 만시발복형(晩時發福型)도 있다.

어머니를 묻고 즉시 장가 간 아들 이야기나, 아버지를 명당에 묻고 세 아들이 그로 인해 다 죽었는데, 그 막내 아들이 죽기 전(또는 죽은 영혼이) 잉태시켜 놓은 여자로부터 세 쌍둥이를 얻어 가문이 번창하고 출세했다는 고목생화설화(枯木生花說話, 死子得孫說話)가 그 예이다.

④ 풍수 형성: 풍수 형성에는 어느 곳이 명당 터인가를 지시할 때 산꼭대기의 경우 가뭄에 패는 일이 생기고, 우물명당〔黃金井傳說〕의 경우 여자인 어머니는 남이므로 동네 우물에 아버지 시신이 들었다고 폭로하여 아버지가 소 또는 말이 되어 등천하기 직전 실패하는 일이 생긴다.

헤엄 잘 치는 아이가 물 속에 있는 두 명당 터 중 자기 아버지는 좋은 명당에, 부탁한 사람의 아버지 시신은 다음가는 명당에 쓴 바 임금의 차이가 난 일도 생긴다(朱天子와 李成桂說話).

호랑이가 잡아먹고 버린 사람의 머리가 놓인 곳이 명당 터라 하여 그 후손이 부모를 호식(虎食)당하고도 시신을 찾지 못한 가운데 복을 받는 일도 생기며, 네거리 길에 평토장(平土葬)으로 묻힌 처녀귀신이 오줌 누는 남자의 양물을 보고 만족하여 남자에게 출세나 혼인이라는 선물을 주는 일이 생긴다.

위의 명당 터의 위치와 아울러 지사가 얼마나 훌륭한가에 따라 범안(凡眼) · 법안(法眼) · 도안(道眼) · 신안(神眼) 풍수가 있고, 스승에게 제대로 배웠는가, 교만했는가, 꿈을 꾸어 명당 터를 찾았는가, 실제로 산을 많이 답사(求山)했는가에 따른 지사의 자질 이야기가 있다.

풍수설화에 나타난 민간의 수용 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명당을 쓰는 것은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현실적인 불리함을 극복하고 행복인 수(壽, 건강) · 부(富, 財) · 귀(貴, 出世, 榮華) · 다남(多男: 자식 얻기나 배우자 얻기)을 획득하는 것이다.

부족한 조상이 죽어 명당에 묻혀 행복한 후손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풍수설화는 죽음과 삶이 교차하면서도 조상과 후손이 하나로 이어지는 생명의 영속 또는 부활 의식을 담고 있다.

따라서 명당에 매장하는 행위는 땅이라는 정적인 여성에 시신이라는 동적인 남성을 결합시키는 성행위(性行爲), 또는 생산적인 행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머슴살던 총각이 명당에 부모를 모시고 나서 부자가 되었다거나 과거에 합격했다는 설화를 통하여 현실에서의 열등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를 찾을 수 있다.

둘째로, 인간의 본성, 곧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남의 묘를 훔쳐 쓰는 투장(偸葬), 권세를 이용해 약자의 무덤을 빼앗는 늑장(勒葬), 이미 폐허가 된 묘를 다시 쓰거나 명당 터를 돈주고 사서 쓰는 것, 부모의 시신 중 목만 보자기에 들고 다니는 명당 찾기가 있다.

또, 중국인 풍수가 달걀로 시험하는 명당 터를 가로채 쓰는 것(金德齡傳說), 출가한 딸이 친정 아버지를 쓰려는 묘에 물을 부어 못쓰게 하고 시아버지를 모시는 딸의 묘 뺏기, 형제간의 명당 바꾸기도 있다.

각기 자기만 잘 되는 명당 터를 잡아 달라고 풍수에게 부탁한 자식들의 욕심, 풍수가 나쁜 대접을 받아 그 집이 망하게 하려고 잡아 준 곳이 사실은 좋은 명당 터였고, 그 반대로 호의에 보답하려고 잡아 준 곳이 도리어 패가망신 터였다는 이야기 등에서 인간의 한계와 운명과 우연의 힘이 드러난다.

셋째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해명으로, 노고포손(老姑抱孫) · 기오탁시(飢烏啄屍) · 오룡쟁주(五龍爭珠) · 매화낙지(梅花落地) 등 여러 가지 형국을 띤 지형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설화이다.

산의 혈과 맥을 중국인 이여송이나 호종단(胡宗旦), 일본인 또는 관군(官軍)이 잘라 그 고장에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숱한 단혈설화(斷穴說話), 특정한 지형 때문에 장군 · 충신 · 문장가 · 부자 또는 역적이 태어난다는 운명적인 인물 출생 이야기가 있다.

또, 두 장소가 서로 상극이므로 일정한 조처를 한다는 상극대응설화(서울 광화문의 해태관악산의 불기운을 억제하기 위해 있고, 지방에서 지네산이 있으면 닭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 등도 풍수지리에 기반한 이야기이다.

풍수설화에는 금방 죽은 진송장을 합장하지 않는 등의 금기가 있으며, 장식하는 행위(나무 심기, 비석 세우기), 명당 터를 얻기까지 두는 초분(草墳)이나 새로이 옮기는 이장(移葬) 등 장례 의식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풍수설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행복관 · 보상심리 · 신앙심 · 생명과 부활의식, 건강하고 평안한 주거 환경, 조상숭배, 가문의 혈통 사고 등 삶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담고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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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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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전역 상례풍습과 풍수설화연구-호서호남을 중심으로』(이수봉, 서울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6)
「풍수설의 국문학적 수용양상연구」(강중탁, 중앙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7)
「한국의 풍수설화연구」(장장식, 경희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2)
「한국풍수설화연구」(손정희, 부산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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