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선조 때에 활동한 서류(庶流) 시인들의 시단(詩壇).
개설
그런데 향도라는 용어가 조선시대에 ‘상여를 메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주로 사대부가 아닌 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동시에 유희경이 상례(喪禮)에 밝아 왕가나 사대부가의 치상(治喪)에 종사한 것을 지칭한 듯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풍월향도란 사대부가 아닌 서류 · 천인들이 풍월, 곧 시문을 즐기기 위하여 모인 시단이라는 뜻이 된다.
연원 및 변천
유희경이 만년에 은퇴하여 정업원(淨業院) 북쪽 계곡에 침류대(枕流臺)를 지었다. 백대붕(白大鵬) · 박계강(朴繼姜) · 최기남(崔奇男) · 박지화(朴枝華) · 강옥서(姜玉瑞) · 박인수(朴仁壽) · 권천동(權千同) · 공억건(孔億建) 등 사대부가 아닌 서류 · 천인들과 시문을 창수하였다. 이들을 당시에 풍월향도라 불렀던 것이다.
풍월향도에는 당시 사대부로서 문명이 높았던 차천로(車天輅) · 이수광(李睟光) · 신흠(申欽) · 전현성(全玄成) · 홍경민(洪慶民) · 임숙영(任叔英) · 조우인(曺友仁) · 성여학(成汝學) · 박순(朴淳) · 이식 · 이정귀(李廷龜) · 이달(李達) · 장유(張維) 등도 참가하여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의 정황이 『촌은집』 3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촌은집(村隱集)』
- 『조선평민문학사(朝鮮平民文學史)』(구자균, 고려문화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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