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수부(晬夫), 호는 운수당(雲水堂). 아버지는 현령 하계지(河繼支)이며, 김지경(金之慶)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1477년(성종 8) 생원 · 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48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에 보직되었다. 1487년 예문관봉교로서 파출되었던 임사홍(任士洪)의 서용을 극력 반대하였다.
1489년 예조좌랑으로서 민정을 살피는 임무를 띠고 영안도(永安道)에 나갔으나 이듬해 모친상으로 사직하였다. 1494년(연산군 즉위년) 호조좌랑, 이듬해 형조좌랑이 되었으나 연산군의 난정(亂政)으로 사퇴, 고향으로 돌아가 행우산(行于山) 기슭에서 은거하였다.
1498년 지평으로 폐비윤씨(廢妃尹氏)의 입묘추숭(立廟追崇)의 그릇됨을 극간, 곧 순천군수로 나가 무오사화의 화를 면하였으나 임지에서 죽었다. 정광필(鄭光弼)과 친교가 있었으며, 진주 정강서원(鼎岡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