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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국자감(國子監)의 정9품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재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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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국자감(國子監)의 정9품 관직.

내용

정원은 2인이었다. 국자감 학생의 훈육과 학습활동의 독려가 주된 임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종 때 마련된 국자감의 직제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이전의 국자전학(國子典學)이 이를 비롯한 학정(學正)·학유(學諭)·직학(直學) 등으로 분화된 것이라 여겨진다.

이 후 국자감의 명칭변경에 따라 국학(國學)·성균관(成均館) 등으로 그 소속의 변화는 있었으나 고려 말까지 명칭 및 품계와 정원의 변화는 없었다. 문종 때 정해진 녹봉 규정에서는 제47과로 분류되어 10석(石)을 지급받았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교육제도사연구(高麗敎育制度史硏究)』(신천식, 중앙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3)

  • - 「고려시대(高麗時代) 성균관(成均館)의 성립(成立)과 발전(發展)」(민병하, 『대동문화연구(大東文化硏究)』6·7, 1969·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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