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58년(철종 9) 청북암행어사(淸北暗行御史) 이건필(李健弼)이 이전에 한경원의 의주부윤 때의 문제를 조정에 보고하여 죄를 받았다. 1870년(고종 7) 진하예방승지(陳賀禮房承旨)·성균관대사성·규장각직제학을 두루 거쳤고, 1873년 진하 겸 사은사행(陳賀兼謝恩使行)에 정사 이건필과 함께 부사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874년 대사헌, 1875년 이조참판, 1877년에 다시 대사헌·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879년 사은 겸동지사행에 정사로서 수행하였으며 그뒤 공조판서를 거쳐 1881년 한성부판윤·대사헌을 지냈다. 또한 이만손(李晩孫)의 상소내용을 문제삼아 이만손을 귀양보내는 데 앞장섰는데, 경기도 유생 신섭(申㰔) 등이 이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려 곤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1887년에는 갑신정변의 주모자인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서재필(徐載弼)·서광범(徐光範)에게 아직 체포령이 내려져 있었으므로, 그들과 내통한 지석영(池錫永)·지운영(池運永)을 국문(鞠問)하도록 사헌부·사간원의 관원과 함께 상소를 올렸다.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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