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용천 출생. 일명 한영삼(韓榮三). 1914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선교사업을 담당하였다.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 교회를 중심으로 남만주지역에 여러 교회를 설립하였고, 교인 수천명과 소학교(小學校)·중학교(中學校)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이 사이에 맏아들이 살해당하는 등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의지는 꺾이지 않아 출옥 후 시무하고 있던 창성교회(昌成敎會)를 떠나, 1933년 오지인 밀산(密山)·호림(虎林)·요하(饒河) 등 여러 현(縣)의 10여개 교회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이 지역이 오지이고 노령(露領)과 가깝기 때문에 공산당과 비적(匪賊)이 많이 출몰하므로 위험하다고 만류하였으나, 한경희는 “만주순교는 나의 원(願)이다.”라고 하여 강한 의지를 표시하였다.
이곳에서의 개척전도활동은 북만노회(北滿老會)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피를 흘린 순교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북만주의 호림지방에서 전도를 수행하고 있던 중 1935년 1월 공산당 비적에게 살해당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