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개척전도활동으로 북만노회 활성화에 기여한 목사.
이칭
  • 이칭한영삼(韓榮三)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5년 1월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1년(고종 18)
  • 출생지평안북도 용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경로 (한성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개척전도활동으로 북만노회 활성화에 기여한 목사.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용천 출생. 일명 한영삼(韓榮三). 1914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선교사업을 담당하였다.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 교회를 중심으로 남만주지역에 여러 교회를 설립하였고, 교인 수천명과 소학교(小學校)·중학교(中學校)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이 사이에 맏아들이 살해당하는 등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의지는 꺾이지 않아 출옥 후 시무하고 있던 창성교회(昌成敎會)를 떠나, 1933년 오지인 밀산(密山)·호림(虎林)·요하(饒河) 등 여러 현(縣)의 10여개 교회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이 지역이 오지이고 노령(露領)과 가깝기 때문에 공산당과 비적(匪賊)이 많이 출몰하므로 위험하다고 만류하였으나, 한경희는 “만주순교는 나의 원(願)이다.”라고 하여 강한 의지를 표시하였다.

이곳에서의 개척전도활동은 북만노회(北滿老會)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피를 흘린 순교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북만주의 호림지방에서 전도를 수행하고 있던 중 1935년 1월 공산당 비적에게 살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 『한국기독교사연구』(김양선, 기독교문사, 1971)

  • - 『동아일보』(1929.1.1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