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1967년 국립박물관 고적조사보고 제6책으로 나왔다. 필자들은 경기도 파주 옥석리·교하리, 강화 삼거리 등을 비롯한 남한 12개 지역에서 총 60여 기의 고인돌을 발굴해 고인돌의 형식과 선사시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이들은 발굴조사를 통해 남방식 고인돌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덮개돌[上石]과 그 밑에 굄돌[支石]이 없는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덮개돌 밑에 굄돌이 있고 지하의 돌방[石室]에 따로 뚜껑돌[蓋石]이 있는 형식이다.
또한 남방식 고인돌은 원래부터 1인1돌방[一人一石室]이며 덮개돌이 없는 것은 후대에 인위적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았다. 지하 돌방은 판석(版石) 또는 목판 등으로 반드시 뚜껑을 하였고, 지하에 아무 구조가 없는 것은 구덩이[土壙]가 아니라 돌방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고인돌의 돌방들 중에는 굽혀묻기[屈葬]도 불가능할 만큼 작은 규모가 많음을 예로 들어 세골장(洗骨葬)같은 이차장(二次葬)이 행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러한 남방식 고인돌은 중부 이북지방에서 발생했으며, 인천·수원·용인을 연결하는 이남에서는 북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 고인돌의 연구를 통해 고인돌문화가 동검문화(銅劍文化)보다 연대적으로 앞서며, 남방식 고인돌은 서기전 2세기 이전까지는 소멸했다고 하였다.
이로써 고인돌과 동검문화를 시기적으로 떼어놓고 마제석검(磨製石劍)이 동검을 모방했다는 종래의 설을 뒤엎는 새로운 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특히 북한과 전라남도지방에서 고인돌이 많이 발굴되어 고인돌의 형식변천과 개석식(변형 고인돌 포함)이 제일 이르거나 또는 제일 늦은 것으로 보는 등의 새로운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이로써 여기에서 보이는 연대관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나라 고인돌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연구라는 점에서 아직도 큰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