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대흥(大興).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등 3군의 부사와 남경유수(南京留守)를 지내면서 혜정(惠政)을 베풀었다.
명종 초에 대부경(大府卿)으로 제배되고 추밀원우승선(樞密院右承宣)에 뽑혀 부사에 승진하였는데, 송유인(宋有仁)에게 거슬려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로 강등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참지정사 보문각대학사 판예부사(參知政事寶文閣大學士判禮部事)가 되고, 이어 정당문학 판병부사(政堂文學判兵部事)가 되었다. 1183년(명종 13)에는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郎平章事判吏部事)가 되어 공정하다는 평을 들었다. 시호는 정의(貞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