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밝’이라는 두 어휘는 매우 간단하지만 낱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과 의의는 매우 광범하며, 그것이 우리 민족사상의 온상이 되고 문화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위는 매우 귀중하다.
우리 겨레의 원시문화와 사상·풍토를 이해하려면 ‘한’·‘밝’ 두 어휘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낱말이 지닌 원의(原義)가 이미 매몰되었으므로 먼저 언어학·민속학·고고학적으로 고증이 필요하나, 여기에서는 결과적인 사실만 밝히기로 한다.
‘한’은 일반 용어로 쓰이는 경우와 특수한 명사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먼저 일반 용어로서 한은 다음에 제시되는 열 가지 정도의 뜻으로 사용된다. ① 대(大·太), 곧 ‘크다’의 뜻이다. 대전(大田, 또는 太田)의 명칭이 본래 한밭이고, 태백산(太伯山)은 한밝산, 한산(漢山)은 큰 산, 한강(漢江)은 큰 강을 뜻하는 것이 그 예이다.
② ‘하나〔一〕’의 뜻이다. 한 낱〔一枚〕·한 가지〔一件〕·한 시간〔一時間〕·한번〔一次〕 등이 그 예이다. ③ 정(正)의 뜻이다. 한낮은 정오(正午), 한밤중은 자정(子正), 한길은 정로(正路), 한복판은 정중(正中) 등이 그 예이다.
④ ‘시(始)·원(元)’의 뜻이다. 하나가 수의 시초이며, 한배를 시조(始祖) 또는 원조(元祖)라 함이 그 예이다. ⑤ ‘최(最)·극(極)’의 뜻이다. 한껏〔最極〕, 한금갔다(물가가 최고로 앙등한 것) 등이 그 예이다. ⑥ ‘영(永)·장(長)’의 뜻이다. 영평산(永平山)은 본래 한벌산이며, 영천(永川)은 한내, 장백산(長白山)은 한밝산, 장평산(長平山)은 한벌산인 것 등이 그 예이다.
⑦ ‘광(廣)’의 뜻이다. 광복산(廣腹山, 利川)은 한배산이며 광천(廣川, 楊平)은 한내, 광주(廣州)는 백제의 한산(韓山, 韓山州), 광치(廣峙)는 한고개인 것 등이 그 예이다. ⑧ ‘중(衆)·다(多)·제(諸)’의 뜻이다. 한글로 가장 오랜 국역한전(國譯漢典)에 ‘한·의심이 다와다 발하니〔衆疑逼發, 蒙山法語〕, 경상이 저므니 하니(卿相多少年, 杜詩諺解), 한· 업이(諸業, 圓覺經)’로 기록된 것 등이 그 예이다.
⑨ ‘동일(同一)’의 뜻이다. ‘한가지’라는 말이 그 예이다. ⑩ ‘항상(恒常)·무궁(無窮)’의 뜻이다. ‘한결같이’가 그 예이다. 이러한 ‘한’의 음절을 한자로는 ‘桓·韓·汗·干·翰·旱·丸·漢·한·豻·咸·含’ 등으로 표기하였다.
다음으로 ‘한’이 하나의 특수한 명사로 쓰일 때에는 하늘, 통치자인 왕·추장·관장(官長), 산명(山名)·지명(地名)·국명(國名)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하늘의 대명사로 쓰인 경우이다. 천의산(天宜山, 寧邊)은 한우산이며, 천성산(天聖山, 殷山)은 한님산, 천등산(天登山, 安東)은 한등산, 천검산(天儉山, 宣川)은 한검산, 천생산성(天生山城, 仁同)은 하날산성, 천방산(天方山)은 한방산, 천평산(天坪山)은 한벌산, 천불산(天佛山)은 한불산, 천백산(天白山)은 한밝산 등이니, ‘한’의 음절로 하늘을 표상한 것이다.
한은 무한대이며 높고 끝없는 것을 의미하므로 ‘한’의 한 음으로 하늘을 표상한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냥 한산은 큰 산, 한강은 큰 강이다. 또는, ‘천(天)’자가 든 산, 한밝산(太白山) 등은 모두 신산(神山)이니 우리 겨레는 본디 산악숭배신앙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② 천신(天神) 등의 명칭으로 쓰였다. 환인(桓因)은 하느님 또는 해님인데, ≪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연(一然)이 승려이므로 불교적 석제환인(釋帝桓因:제석천왕의 이름)의 환인을 인용하였다. 따라서 한숫(桓雄은 한숫, 곧 하늘의 사내·아들의 뜻)은 하늘의 아들이며, 환검(桓儉) 또는 왕검(王儉)은 신인(神人)·신왕(神王)의 뜻이다. ≪신당서 新唐書≫에 고구려가 크한신〔可汗神〕을 제사한다 함은 ‘크한’이 신의 이름인 것이다.
≪삼국지≫ 마한조(馬韓條)에 보면 국읍(國邑)에서 각기 한 사람을 세워서 천신의 제사를 맡게 하였는데, 이름하여 천군(天君)이라 한다. 한 천군이 또한 한님·하느님을 상징한 신주(神主)인 것이다. ‘한검’의 ‘검’은 또한 신의 대명사이다. <고제신가 古祭神歌>에 ‘어아어아 나의 한배금(우리 大皇祖의 뜻, 금은 곧 검으로서 신의 대명사)’이 그것이다.
③ 통치자 또는 추장·관장의 칭호로 쓰였다. 고구려의 동명왕은 본디 ‘새밝한’(‘새’는 東, ‘밝’은 明, ‘한’은 王으로 번역된 것)’이며, 신라의 박거세한(朴居世干)은 ‘밝거누리한’, 곧 사람을 거느리는 자라는 뜻이다. 혁거세한(赫居世干)도 같은 뜻으로, 박(朴)과 혁(赫)은 ‘밝’ 또는 ‘붉’인데 천일신(天日神)의 대명사이다.
혁거세한과 박거세한이 ‘밝거누리한’이나 ‘붉거누리한’인데, 후세 사람이 그 뜻을 모르고 박혁거서한(朴赫居西干)으로 쓴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居世干, 곧 거누리한이 본디의 말인데, 居西干으로 표기함은 잘못된 것). 그것은 민족문화의 원천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눌지마루한(訥祗麻立干)·자비마루한(慈悲麻立干) 등에서 마루한을 옛적에 마루를 말뚝〔橛〕, 곧 왕과 신하의 서는 위치를 표시한 패말뚝으로 해석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립(麻立)은 말뚝이 아니라 마루〔宗〕·용마루〔極〕의 마루로서 가장 높은 것을 뜻함이니, 높은 왕을 말함이다.
한은 또한 추장·대신·관장의 뜻이니, 신라의 대상(大相)은 서불한(舒弗翰·徐伐干·伊罰干·角干은 다같이 서벌한·서불한으로, 본디는 ‘새밝한’이 전음된 것)이라 하였다. 그와 같은 각 등급의 한이 있다(伊尺干·迎干·破彌干·乙吉干·咄干이 있는데, ‘支那南史’에는 辰韓의 其官에 ‘有乙旱支·壹旱支·育旱’이라 하여 干을 旱으로 음역).
‘새밝’은 동쪽에 밝아 오는 광명의 뜻이며, 밝은 본디 태양신을 뜻한다. 새밝은 새벌·서벌로 변음된 것이며, 본디 겨레가 모여 사는 지방의 명칭인데, 한은 그 추장·통치자이다. 신라도 ‘새벌(新은 새, 羅는 벌라)’의 한자표기이다. 가락국에는 처음에 군신(君臣)이 없고, 아도한(我刀干)·여도한(汝刀干)·피도한(彼刀干)·오도한(五刀干) 등 9한의 추장이 있었다고 한다.
아도·여도·피도 등은 그 지방의 이름일 것이고, 한은 그 추장이다. 이와 같은 한은 당시 삼한에 공통된 통치자 또는 추장, 다음에 관장의 칭호로 불린 것이다. 몽고에서 왕을 크한(可汗·克汗)으로 부른 것도 같은 어원에서 온 것일 것이다.
④ 신산(神山)의 칭호로 쓰였다. 위에서 보인 ‘태(太)’·‘천(天)’·‘장(長)’자를 위에 둔 산은 대체로 민족적 천신신앙에서 온 신산들이다. 예컨대, 태백산(太伯山·太白山)·천백산(天白山)·천불산(天佛山)·천방산(天方山)·천봉산(天鳳山)·천봉산(天峰山) 등은 한밝·한불·한방산 등으로 천신을 모신 신산들이다. 또, 장백산·장평산(長坪山)·장평산(長平山)·장파산(長坡山)·장배산(長背山) 등은 한박산·한벌산·한배산이 그 원음이다.
⑤ 국명으로 사용되었다.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卞韓)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밝’은 본디 광명을 뜻함인데, 그것이 태양신의 대명사로 쓰였다. 하늘에 있어서는 광명·태양신이 되고, 인간에게 와서는 불〔火〕이 되고, 그것이 다시 겨레가 모여 사는 곳으로 옮겨와서 불·벌(國·原·野·坪 등)이 되었다. 이에 대한 것은 앞으로도 많은 고증이 필요하다. ‘밝’은 한자로 ‘白·伯·朴·百·發·赤·撥·渤·明·貊·狛·望·伏安·朱安’ 등으로 표기되었다.
대표로 ‘白’을 살펴보면 백이(白夷)·백민·백족·백두산·백악산·백산·백마산(白馬山) 등이다. ‘伯·朴·百’이 ‘밝’의 표기임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이 우리 백민(白民)·백족(白族)을 그들의 자존심에서 중국 이외의 민족을 이적(夷狄)으로 취급, 백이(白夷, 또는 東夷)라 하고 다시 ‘백(白)’자 곁에 개·사슴 녹(록·시) 등을 붙여서 ‘狛·백·貊’으로 쓴 것이다.
근본은 밝민족인 것이다. 발은 또한 밝인데,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발조선(發朝鮮)·발숙신(發肅愼)이라고 함은 밝족의 나라를 뜻함이다. 명(明)은 밝이니 동명왕이 새밝한이며, 한사군 중에 소명(昭明)이 새밝이며, 신라의 동부 명활산(明活山)이 밝안산인 점 등이 그것이다.
그것이 우리 겨레가 집단으로 모여 사는 곳에 옮겨오면서 불(弗·不·市)·부루(夫婁)·불류(沸流)·부여(夫餘·扶餘)·부리(夫里)·비리(卑離) 등으로 표현되었고, 또한 ‘赤·朱·陽·不兒·負兒·佛’의 한자음이 모두 불에서 온 것이다. 즉, 하늘에서 태양신이 ‘밝’인데 인간에 강림한 산을 한밝산(太伯山)이라 함이니, 그 밝신은 주로 산에 깃들인다.
그러므로 상고의 우리 겨레가 모여 사는 곳에는 그 밝신을 모신 신산이 있으니, 그것이 곧 장백산(또한 한밝산)·백두산·백마산·백룡산·백계산(白鷄山)·대백산(大白山)·대박산(大朴山)·박달산·함박산·백복산·백암산·천백산(天白山)·조백산(祖白山)·비백산(鼻白山) 등으로, 곧 태양신을 모신 신산이다.
그리고 겨레도 백민·백족·백의민족(白衣民族)·백이 등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불은 한숫〔桓雄〕이 인간세계에 가져온 것으로서,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이다. 당시에는 불을 해〔日〕의 분신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고구려 이전의 북부여왕은 천제(天帝)의 강림으로서 자칭 해모수(解慕漱)라고 하였다.
해모수 곧 ‘해모시’는 해를 모시던 분(日侍者의 뜻)이다. 그의 아들을 ‘부루’라 한바, 부루는 곧 불〔火〕을 말함이다. 그는 해(解)를 성씨로 한 것이다. 해모시는 북부여왕인데, 해부루는 동부여왕이 되었다. 부여라는 지명도 불에서 온 것이다(弗·不·火·沸流·夫里·卑離가 다 같은 원어에서 온 것과 같음).
고구려 시조 동명왕은 새밝한인데 해부루의 아들 금와왕 때에 태백산(太伯山), 곧 한밝산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처녀를 알게 되었다. 처녀는 하백(河伯)의 딸인데 나가 놀다가 천제의 아들 해모시(곧 모수)가 자기를 꾀어 웅신산(熊神山) 아래에서 사통하였다가 부모에게 쫓겨났다고 하자, 금와왕이 이상히 여겨 밀실(密室)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이 비쳐오므로 피하자 해그림자가 좇아와 비치더니 임신하여 큰 알 속에서 나온 것이 주몽(朱蒙)이다.
곧 아버지는 해모시〔日侍者〕, 어머니는 해밝(河伯은 河神이 아니라 日神을 말함)이고, 그 주거지는 한밝산 우밝수이며 햇빛이 비치어 임신하여 낳은 것이 주몽, 곧 동명왕이라는 이야기는 상고 우리 겨레의 천일강신(天日降神)에 의한 국조(國祖)탄생설이다. 단군신화, 신라시조 밝거누리한(朴居世干, 또는 赫居世干)의 천일강신설, 가락국김수로왕이 황금알에서 화생(化生)하였다는 이야기는 모두 같은 범주이다.
천제·일신(日神)은 우리 겨레의 시조와 직접 연결되었다. 주몽은 또한 ‘붉’ 무엇이었을 것이다. 주몽의 ‘태’자는 불류(沸流)나 북부여 왕의 해부루와 같이 불이다. 부루왕의 대상(大相)은 아란불(阿蘭弗)이었다. 신라 시조 밝거누리(또는 붉거누리)는 고구려의 새밝한과 같은 것이다. 같은 천일신(天日神)의 강정(降精)이기 때문이다.
또, 신라 시조 밝거누리한의 탄생신화에 고허촌장(高墟村長) 소벌공(蘇伐公)이 양산록(楊山麓)에서 큰 알을 발견하여 알 속에서 어린아기를 얻었다 함도 알은 태양을 상징함이니, 동명왕이 알에서 났다 함이 태양을 의미함과 같다. 모두 해의 강신을 말함이다.
신라 김씨왕(金氏王)의 시조 알지(閼智)가 금독(金櫝:금궤)에서 나왔다 함도 태양을 상징함이며, 신라 석씨왕(昔氏王)의 시조인 탈해왕(脫解王)은 완하국(琓夏國) 함달(含達) 부인이 알을 낳았는데 사람으로 화한 것이 탈해(탈해는 달해, 곧 달과 해를 뜻함인 듯하다)라는 등의 내용은 모두 알이 아니면 독이 태양을 상징함이다.
우리 겨레는 태고적부터 태양숭배사상을 핵심으로 하여, 몽고지방에서 해가 뜨는 곳을 향하여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단군설화부터가 천일강신설로 시작되었다. 밝은 곧 태양의 광명이며 신이다. 그러므로 태양신이 강림한 곳은 높은 산으로서 한밝산이다. 태양의 광명과 온도는 곧 인간에 있어서 불이다.
불로써 원시림을 불사르고 그곳을 거주지로 삼아 집단을 이루어 사는 들이나 벌판이 곧 불이며, 다음에 벌로 일컬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불〔神市〕이 신들의 집단거주지인데, 북부여·동부여도 부루의 한자표기가 음이 조금 달라진 것이며, 주몽이 금와왕 일곱 아들의 시기를 받아 도피하여 졸본주(卒本州)에 이르러 불류수(沸流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불류가 불·부루와 같은 것이다.
졸본도 본디 ‘率本’의 한자표기가 ‘卒本’으로 오사(誤寫)되었을 것이니, 솔본은 소부리(本은 뿌리니 소불한·서불한과 같은 소불·서불임)일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삼국유사≫ 고구려조에, 옛적에 영품리왕(寧稟離王)의 시비(侍婢)가 어떤 기운이 하늘로 좇아오는 것을 보고 임신하여 낳은 것이 마침내 부여왕이 되었다 하고, 그 주석에 영품리는 곧 부루왕의 다른 칭호라 한바, 영(寧)은 어떤 음을 취함인지 알 수 없으나, 품리는 부루의 한자표기임이 틀림없다.
고구려 지리지(地理誌)에 유류왕(儒留王) 22년에 국내성(國內城)에 도읍하였다 하고, 주(註)에 ‘혹은 우야암성(尉耶岩城)·불이성(不而城)이라 함’이라 한바, 국내(國內)도 불내·벌내(國도 벌의 한자표기이며, 國·原·坪·平·柳·楊이 다같이 벌의 한자표기임)이다.
이처럼 주에 불이(不而)라 하였으므로 불이는 본디 불라(不耐)이며 우야(尉耶)는 ‘蔚那’의 오사(誤寫)이니, 백제시조 온조(溫祚)가 하남 위례성(尉禮城)에 도읍하였다고 한 위례도 우야·울나의 전사(轉寫)이다. 울나는 본디 불라이니 양주동(梁柱東)의 증언과 같이 하늘의 원음 한발이 하날·한울로 전음되고, 서불·서벌이 서울이 되고, 술〔酒〕은 신라의 고어 ‘스발’이 수울로 전음되듯이, 고어의 ‘바’ 음이 뒤에 ‘아’로 변한 것이다.
불내·벌내는 다같이 들과 내〔川〕를 뜻한 말이다. 다음 평양(平壤)도 벌내의 한자표기이다(평양을 ‘柳京’으로 쓴 것도 벌을 버들 유자 차용함). 본디 불은 고어 ‘라’이니, 불라·벌라는 불내·벌내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불·벌·발은 같은 어음의 변화로서, 신라의 서불한은 서벌한·서발한으로 통칭된 것이 그 실례이다.
그것이 다시 부리(夫里)·비리(卑離)로 전음되었다. 상고에 겨레가 집거하던 곳은 대체로 불이 아니면 벌이니, 위에서 열거한 신불·부여·불류·불이·불라를 비롯하여, 불함산(不咸山)·불미국(不彌國:馬韓列國)·불사(不沙, 不社:馬韓列國) 등이며, 비자불(比自火, 또는 比斯伐:百濟地名)·개불(皆火:百濟地名) 등이다.
또한, 신라의 모라불(毛良火)·밀불(推火:지금의 密陽)과 기타 불로 불린 지명들(音什火·仇火·深巴火·居知火·西火·冬刀火·推良火·達句火·舌火·雉省火·奴斯火·切也火·赤火·斯向火·于火·掘河火·比火·退火·三蚊火 등)이 그것이다.
그것이 벌로 불리는 경우는 새불·새라불이 새벌·서라벌로 불리는 것 등이다. 부리(夫里)·비리는 백제 때의 땅 모로비리(牟盧卑離)가 신라의 모라부리, 백제 때 벽(辟)비리가 신라의 파(波)부리 등으로 표기된 것이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은 태(太)·대(大)·일(一)·정(正)·최극(最極)·상항(常恒)·무궁(無窮)의 뜻이며, 그것이 명사로서는 천(天)·천신(天神)·신인(神人), 통치자인 왕·추장·관장, 또는 신산(神山)·국명 등으로 활용되었다.
‘밝’은 본디 광명·태양신의 대명사로서, 또한 신산(神山)·개국조(새밝한·밝거누리한 등), 추장·관장(서발한·서벌한·서불한은 같은 밝임.)이 되고, 또 불은 인칭(人稱)·국도(國都)·평원(平原)·인민집거지(人民集居地) 등 지명으로서 불·부루·부여·부리·벌·비리 등으로 표기되었다.
우리 겨레는 먼 옛날부터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온누리를 밝게 비추어 주는 태양의 광명과 따사로움에 무한한 신비와 감사를 느끼며 태양을 숭배하여 왔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태양은 드러난 하느님이기도 하다. ‘한’ 한 음으로 하늘을 표시할 경우에는 한없이 크고 넓고 높으면서 천지만유의 근본이 되는 하느님이 있고, 밝고 드러난 신으로서 태양은 그 구체적인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이 태양의 광명을 타고 인간에 강림한 곳이 높은 산이다. 그러므로 우리 겨레는 하천문명 이전에 산악중심의 문화사가 전개되었고, 신산을 모신 산악숭배사상이 정신문화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웅천신이 태백산에 강림하여 신정(神政)을 베풀고 단군왕검이 나중에 구월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총체적으로 ‘한·밝’은 대일광명의 세계이다. 그것은 민족의 이상인 것이다. 요컨대, ‘한·밝’ 두 음절이 지닌 비밀을 모르면 우리 겨레의 원시문화와 사상원천을 모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태양숭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