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사사동에 위치한다. 1995년 8월 7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응인(韓應寅, 1554~1614)의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졸재(百拙齋)이다.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한 후,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적발하여 평난공신(平難功臣)에 봉해졌고 1590년(선조 23)에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봉해졌다. 특히 그는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다.
봉분은 단분(單墳)으로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와의 합장묘이며, 비교적 큰 장대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방형의 호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묘비·혼유석·상석·향로석이 가까이 모여있고, 묘역 앞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어 있다. 1994년 묘역을 새로 정비하면서 묘비의 기대(基臺) 부분과 상석·향로석·계체석 등의 석물을 교체·설치하였다.
신도비는 묘역의 50m 우측 전방에 위치하는데, 우진각지붕형 가첨석(加檐石)·비신(碑身)·기대(基臺)로 구성되었다. 규모는 높이 179㎝, 너비 79㎝, 두께 23㎝이다. 이 신도비의 양식적 특징은 가첨석(加檐石)의 하단 좌우측에 간략한 공포(栱包)의 형상을 조각해 놓음으로써 압박감을 덜어주어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비문은 김류(金瑬)가 글을 짓고 한인급(韓仁及)이 글씨를 썼으며, 김광현(金光炫)이 전액(篆額)을 써서 1642년(인조 20)에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