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경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평안북도에서 보합단 조사부장으로 활동하며 군자군을 모금하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이경(履敬), 이경(理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3년(고종 20)
사망 연도
1927년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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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평안북도에서 보합단 조사부장으로 활동하며 군자군을 모금하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별명은 이경(履敬·理景).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0년 3월 군자금 모금과 친일배 처단을 목적으로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에서 출범한 대한청년결사대는 1920년 5월 하순 대조선독립 보합단(일명 普合團)으로 명칭을 바꾸고 부서를 정비하였는데, 이 때 조사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들은 6월 초순 의주군 고관면의 동암산(東巖山)으로 근거지를 옮긴 뒤, 2명 내지 3명을 1개조로 편성하여, 권총 1정씩을 휴대하고 군자금을 모금하였는데, 그 횟수가 83회이며, 금액은 무려 5,700원에 달하였다.

또한 보합단은 군자금 모금만 아니라 9·10월에는 일본군을 맞아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 해 9월 28일 동지들과 더불어 의주군 월화면으로 이동하여 월화면장 신봉주(申鳳周)로부터 장총(엽총) 1자루와 탄환 13발을 탈취하였다.

1920년 11월 2일 동지들이 붙잡힐 때 위기를 면하였지만, 얼마 뒤에 일본경찰의 급습을 받아 교전 끝에 붙잡혔다. 1921년 6월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제령 7호 및 폭발물취체규칙위반, 강도·살인·방화 등의 죄명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9(국가보훈처, 1991)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朝鮮獨立運動』1·2(金正明, 東京 原書房, 1967)
집필자
김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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