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은 1945년 11월에 창업자 고(故) 조중훈 회장이 설립한 한진상사가 그 모태이다. 창업 당시 트럭 1대를 가지고 시작한 한진상사는 1947년 경기도 지역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하였고, 1956년 주한 미군과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1958년에 3월에는 한진상사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60년 11월 한국항공(Air Korea)을 설립하면서 비행기 대절사업을 시작하였다. 1961년 6월에는 한진관광㈜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는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과 항공권 판매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였다. 한편 1963년에 한진관광㈜은 국내 최초로 서울~인천 간 특급버스를 운행하였다. 한진상사가 고속 성장의 기반을 다진 것은 1966년 3월 주월 미군사령부와 790만 달러의 군수물품 수송 계약을 체결해 월남전 미군 군수물자 수송사업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는 1958년 주한 미군과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체결한 것이 자연스럽게 월남으로까지 사업이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었다. 이처럼 사업이 안정적으로 전개되면서 한진상사는 1967년에 대진해운을 설립하였고, 동양화재해상보험을 인수하였다. 1968년에는 한국공항과 한일개발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에 인하학원과 인하공대를 인수하였다. 인하학원은 1954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설립된 공과대학으로, 각계의 성금과 국고 보조금으로 운영되다가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진상사가 인수하게 된 것이다. 한진상사는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적자에 허덕이던 국영기업인 대한항공사를 인수하였으며, 상호를 대한항공으로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항공운송 사업에 진출하였다. 인수한 그해에 대한항공은 보잉 720기를 도입하여 국제선에 투입함으로써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
1971년에는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미주 정기노선(화물)을 최초로 개설하였다. 1971년 12월에는 인하공과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1972년에 한진상사는 ㈜한진으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1973년에 현재 메리츠(MERITZ)증권의 전신인 한일증권을 설립하였다. 또한, 같은 해 5월에는 대한항공 B747 점보 1번기를 도입하였고, 10월에는 서울에서 파리까지 유럽 정기노선(화물)을 최초로 개설하였다. ㈜한진은 1974년 1월 국제호텔을 인수하였으며, 8월에 유가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제주 KAL호텔을 준공하였다. 1975년에는 대한항공이 서울파리 여객노선을 최초로 개설하였으며, 1976년 12월에는 항공기를 제작하는 김해공장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1977년 5월에는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로 한진해운을 설립하였다. 1978년 12월에는 학교법인 정석학원을 설립하였고, 다음 해인 1979년 1월에 국립 한국항공대학교를 인수하였다. 그리고 1979년 3월 대한항공은 서울뉴욕 여객 및 화물 노선을 개설하였다.
1980년대에는 ㈜한진이 해운과 항공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1980년에는 동아통운을 흡수·합병하였다. 1982년 9월 대한항공은 국산 전투기(제공 제1호)를 생산하였으며, 1984년 11월에는 국산 헬기 첫 수출 계약을 맺었다. 1985년에는 제주시에 이어 서귀포에 KAL호텔을 준공하였다. 한편, 1985년부터 한진해운은 뉴욕호를 시작으로 2,700TEU급 컨테이너선을 대량 도입하였고, 1986년 11월에 미국 시애틀항에 전용 터미널을 개설하였다. 1987년 1월에는 현재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준설공사를, 1989년 6월에는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창업자 조중훈 회장은 2세 그룹에 경영권을 분리하였다. 즉 대한항공을 장남(조양호)에게, 한진중공업을 차남(조남호)에게, 한진해운을 삼남(조수호)에게, 그리고 1990년 한일증권에서 상호 변경한 한진투자증권을 사남(조정호)에게 각각 맡겼다. 1991년에 ㈜한진은 코리아타코마 조선공업을 인수하였으며, 1992년에는 국내 최초로 택배사업을 시작하였다. 1992년에 한진해운은 국적선사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달성하여, 세계 10위권 정기선사에 진입하였다. 1995년에 대한항공은 항공기 보유 100대를 돌파하였으며, 한진해운은 거양해운을 인수하였다. 1998년 4월 한진관광이 KAL개발을 합병하였고, 1999년 한진건설과 한진종합건설이 한진중공업에 흡수·합병되었다.
2000년 3월 한진투자증권이 메리츠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4월에는 메리츠증권이 한진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를 하였다. 또한, 2005년 3월에는 동양화재가 한진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를 하였고, 10월에는 한진중공업이 계열 분리되어 한진중공업그룹으로 출범하였다. 2008년 1월에는 진에어를, 5월에는 에어코리아, 8월에는 호미오세라피를 잇달아 설립하였다.
2010년 6월 대한항공은 국제 항공화물 6년 연속 세계 1위(2004~2009)를 달성하였다. 2013년 8월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투자사업을 총괄하는 ㈜한진칼과 항공운송사업을 담당하는 대한항공으로 인적 분할하여, 지주회사로 ㈜한진칼을 세웠다. 이때 분할 존속회사인 대한항공은 항공운송사업·항공우주사업·기내식 판매사업·리무진 사업부문을 맡았다. 그리고 분할 신설회사인 ㈜한진칼은 투자 사업부문을 맡았다. 지주회사로 설립된 해인 2013년 9월 16일 ㈜한진칼은 유가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한진칼은 지주회사로서 7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지주 사업, 경영 자문 및 컨설팅, 브랜드 및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 관리, 라이선스사업, 부동산 임대업, 관광사업, 호텔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주요 영업수익은 임대 사업수익, 상표권 사용수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014년 12월에는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일어나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미국 뉴욕 주 JFK국제공항에서 공항에서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이동하던 중 여종업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내리게 하기 위해 여객기가 회항한 사건으로 대항항공과 한진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 악재는 또 닥쳤다. 2015년 당시 컨테이너선·벌크선 등 160여 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회사인 한진해운이, 해운 수요의 위축과 선박 공급 과잉에 따른 영업실적 악화와 유동성 부족 심화로 2017년 2월 법원의 파산선고로 창립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항공의 항공기 보유 대수는 2016년 11월 기준 여객기 130대, 화물기 30대 등 총 160대이다. 2017년 도입 예정인 여객기 15대, 화물기 1대 등 총 16대를 고려하면 총 항공기 예상 보유 대수는 176대가 될 전망이다. 한진그룹의 사업영역은 항공운송업·육상운송업·택배사업·정보통신업·호텔사업·기내판매업·관광업·기내식사업·항공우주사업·리무진사업·지상조업 등이다.
한진그룹은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비롯하여 항공 부문에 대한항공·진에어·한국공항·에어코리아, 육운 부문에 ㈜한진, 관광·호텔·부동산 부문에 한진관광·칼호텔네트워크·한공종합서비스·정석기업, 정보·서비스 부문에 한진정보통신·토파스여행정보·싸이버스카이·한국글로발로지스틱시스템·유니컨버스, 비영리 법무법인에 정석인하학원·인하대병원·일우재단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이들 국내 계열사 중에서 상장된 회사는 ㈜한진칼·㈜대한항공·㈜한진 등 4개사이다. 한진그룹의 국내외의 계열사를 합치면 국내 29개, 해외 17개 등 총 46개사다.
2016년 기준 총자산은 29조 458억 원, 매출액 15조 166억 원, 영업이익 1조 2,339억 원, 종업원 3만 1,124명이다. 2016년 9월 기준 한진그룹의 최대주주는 ㈜한진칼이며 보유 지분은 21.63%다. 한진의 2대 주주는 조양호 회장으로 6.87%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칼을 포함한 조양호 회장 일가의 지분은 총 34.59%다. 2019년 4월 조양호 회장 사후 동년 10월에 GS홈쇼핑은 조양호 회장이 갖고 있던 한진 지분 전량인 6.87%를 인수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