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1952년 10월 28일에 부산에 설립한 한국화약주식회사가 그 모태이다. 창립자 김종희 회장은 1952년 6월 조선화약공판 운영권을 획득하였고, 4개월 후인 10월에 이 회사를 건립하였다. 6 · 25전쟁이 휴전된 이후 한국화약은 서울의 중구 회현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여 화약의 자체 생산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1955년 10월에 한국화약은 인천의 조선유지 화약공장을 매수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제품생산체제에 돌입하였다. 제품 출시만이 아니라 화약의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에도 몰두하여 1957년 다이너마이트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한국화약이 주로 생산한 것은 산업용과 광산용으로 쓰이는 폭약이었다. 1959년 6월에는 화약류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하여 당시 주로 외국 수입 화약류에 의존하던 내수시장을 국산 제품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한국화약은 1960년대에 들어와 각종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면서 업무 영역을 다양한 계열로 확산시켜 나가는 데 주력하였다. 먼저 1964년에는 부도 위기에 몰려 있는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는 석유화학업종인 한국화성공업㈜을, 1966년에는 무역회사인 태평물산㈜을 각각 설립하였다. 또한, 1968년에는 제일화재해상보험㈜을 인수하여 금융업에 뛰어들었고, 1969년에는 경인에너지㈜를 설립하였다.
한국화약은 1973년에 대일유업주식회사 · 태평양건설주식회사 · 태평양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74년에는 김포요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때 한국화약은 방위산업체로 지정되었다. 1975년에는 학교법인 천안북일학원을 창립하여 이듬해 3월 6일 천안북일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1976년에는 서울플라자호텔과 제일증권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81년 한국화약 창업자 김종희 회장이 타계하고, 장남 김승연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2세 경영이 시작되었다. 1982년 11월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 및 수출 1억불탑을 수상하였다. 1985년에는 한화리조트의 전신인 정아그룹을 인수하였고, 이듬해인 1986년에는 한화이글스의 전신인 프로야구단 빙그레 이글스를 창단하였다. 1988년에는 한양화학의 한국프라스틱공업을 합병하였다.
한국화약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2세 경영에 의한 사업 영역 확대가 더욱더 활성화되었다. 1992년에는 한국화약 창업자의 장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차남 김호연 빙그레 회장 사이에 재산권 다툼이 일어났다. 이 분쟁은 쉽게 해결이 나지 않자 소송으로 이어졌다. 한국화약의 김승연 회장은 한국화약이 세간에서 흔히 ‘한화’로 불리자, 1993년 ㈜한화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그리고 1995년에는 골든벨상사㈜를 흡수 · 합병하여 무역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한편, 형제간의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던 3년여에 걸친 소송은 1995년에 형제가 화해를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동생인 김호연 회장은 1996년 1월에 재산권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하였으며, 1997년 12월에는 계열 분리를 통해서 빙그레가 한화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한화는 1996년 덕산토건㈜과 한화정보통신㈜을 흡수 · 합병하여 건설 분야와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하였다. 1998년에는 FAG한화베어링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무역의 날을 기념해 은탑산업훈장과 수출 10억불탑을 수상하였다. 또한, 1998년 12월에는 한화기계㈜를 흡수 · 합병하여 기계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2000년에는 ㈜동양백화점과 ㈜한화기술금융을 계열사에 편입하고, 항공기부품 공장을 인수하여 기계 부문을 크게 확장하였다. 2001년에 ㈜한화는 구미에 있는 대우전자의 방산부문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건설과 기계를 분할하여 ㈜한화건설과 한화기계㈜를 각각 설립하였다. 또한, 2002년에는 한화그룹이 대한생명과 계열사인 신동아화재보험, 63빌딩을 모두 인수하였다. 이후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수익성 낮은 사업 부문을 정리하였는데, 2003년에 FAG한화베어링의 지분을 합작사에 매각하였으며, 정보통신 부문의 이동통신과 교환기 사업을 매각하였다. 2005년에는 인천공장 부지개발과 관련한 사업약정서를 체결하였으며, 2006년에 인천공장을 보은으로 이전 완료하였다. 그리고 2006년 10월에 인천공장 부지 인천에코메트로 사업 1차 분양, 2007년 7월에 인천공장 부지 인천에코메트로 사업 2차 분양을 실시하였다. 2007년에는 종합연구소 준공하고 센턱㈜을 인수하였다. 이 해에 한화그룹은 새로운 CI를 선포하였다. 2008년에는 구미공장과 창원공장을 통합하였고, 같은 해 12월에 제45회 무역의 날 기념 금탑산업훈장과 수출 20억불탑을 수상하였다. 2009년 9월에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항공우주 기술을 집약한 아산공장을 건립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한화기념관을 개관하였다.
㈜한화는 201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였다. 2010년 6월에는 마이크로 에어로봇을 합병하였으며, 2011년 6월에는 한화차이나를 출범시켰다. 특히, 2014년 12월 삼성테크윈을 인수하여 한화테크윈으로, 삼성탈레스를 인수하여 한화탈레스로 각기 상호를 변경하였다. 또한, 한화케미칼을 통해서 삼성토탈을 인수하여 한화토탈로,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여 한화종합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한화종합화학은 2022년 9월 한화임팩트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이때 한화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인수한 4개사의 시장 가격은 1조 9,000억 원대에 달했다. 이처럼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인수하면서 유도무기, 정밀탄약체계 등을 주력으로 하는 ㈜한화 방산 부문이 크게 확충되었다. 또한 한화테크윈의 항공기 엔진, 자주포 등 지상 장비 플랫폼, 그리고 한화탈레스의 항공전자, 레이더 등을 사업 분야에 포함시키면서 방산전자 사업을 포괄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어서 ㈜한화는 2015년 2월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이 통합해 한화큐셀을 출범시켰다. 같은 해 4월 한화종합화학 및 한화토탈이, 6월에는 한화테크윈 및 한화탈레스가 역시 출범되었다. 2016년 4월에는 한화테크윈이 장갑차 유도무기 등을 생산하는 두산DST를 인수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한화는 한화디펜스와 한화시스템의 항법과 레이저 사업을 이관받았다. 2022년 11월부터 자회사인 한화건설을 합병하여 (주)한화/글로벌·(주)한화/모멘텀·(주)한화/건설 등 3개 부문으로 개편했다.
㈜한화의 사업분야는 크게 글로벌·모멘텀·건설의 3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주요 계열사로는 한화생명 · 한화케미칼 · 한화테크윈 · 한화건설 · 한화호텔앤리조트 등이 있다. 2016년 ㈜한화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그룹 내에서 금융을 제외하고 가장 몸집이 컸던 화학제조업의 경우 2016년 말 기준 자산 9조 2,069억 원, 매출액 5조 446억 원이었다. 그리고 방위산업의 경우 자산 12조 7,106억 원, 매출액 5조 8,320억 원이었다. 2016년 기준 ㈜한화의 최대주주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며, 보유 지분은 22.6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