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50m.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동국여지승람』 관방(關防)조에 “합포성지는 배극렴(裵克廉)이 쌓은 우도병마절도사영(右道兵馬節度使營)의 터로 보인다.
이 영은 옛 합포현에 위치하였는데 부(府)와의 거리는 13리로, 석성의 주위는 4,291척이며, 높이는 15척이고, 안에는 5개의 우물이 있다. 우왕 4년(1378)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성의 축성기에 따르면, 성 위에 2척의 간격으로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설치하고 여장마다 방패 하나, 창 하나씩을 배치하고, 4대문 가운데 동문을 원인(元仁), 남문을 회례(會禮), 서문을 회의(懷義), 북문을 용지(勇智)라 하였으며, 성안에는 의만창(義滿倉) · 회영고(會盈庫)를 두었다.
1426년(세종 8)에 좌우도(左右道) 병영(兵營)이 합해져 경상도 병영이 되었다가 1437년 다시 분리되었으며, 1593년(선조 26)에 경상병사 이수일(李守一)이 진주로 우도병영을 옮긴 뒤 합포진(合浦鎭)으로 남은 듯하다.
이 성곽의 축조수법은 조선 전기 남해안의 읍성 축조수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성벽은 장대석으로 된 지대석에 수직되게 쌓아 올렸는데, 상단부로 오를수록 큰 돌에서 작은 돌로 바뀌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외벽은 표토(表土) 밑의 부분에 큰돌을 사용하였으므로 견고하게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창원도호부 산천조에 보이는 합포는 고려 말 원의 세조(世祖)가 일본 원정을 위한 전진기지인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둔 곳으로, 지금의 합포성지가 정동행성이라고도 하나, 고적(古蹟)조를 살펴보면 정동행성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2리 정도 더 떨어진 자산동성(玆山洞城)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