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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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학자 이규용이 삼국시대로부터 조선 순종 때까지의 시인 1,200여 명의 시 2,400여 수를 수록한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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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한학자 이규용이 삼국시대로부터 조선 순종 때까지의 시인 1,200여 명의 시 2,400여 수를 수록한 시선집.
내용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조 순종 때까지 활약한 시인 1,200여 명의 시 2,400여 수를 수록하였다. ≪해동시선≫ 책머리에 윤희구(尹喜求)의 서, 편집자의 자서, 범례·목록 등이 있다. 책의 끝에 최영년(崔永年)의 발이 있다.

편집자의 서문에 ≪해동시선≫은 널리 여러 사람의 시를 채집하고 한 사람의 시를 많이 싣지 않고, 1, 2수씩만을 엄선하는 ‘박이정 정이박(博而精 精而博 : 어떤 사람의 견식이나 무엇을 선정하는 기준이 넓고도 정밀하며 정밀하면서도 넓은 것.)’의 정신에 입각하여 편집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해동시선≫의 구성은 각 시체별로 시인과 시를 시대순으로 배열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리고 검색하기에 편리하도록 각 시체마다 왕조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승려와 여성의 시는 각 체의 맨 끝에 실었다. 이들의 시는 구태여 연차(年次)를 고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 이렇게 하였다.

≪해동시선≫은 오언절구 426수, 오언율시 680수, 육언절구 22수, 칠언절구 651수, 칠언율시 499수, 오언고시 12수, 칠언고시 12수 등의 시가 실려 있다. 편집자에 대해서는 지금 그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윤희구·최영년 등의 당시를 대표하는 한학자의 서문을 싣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당시는 한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시선≫ 편집자 이규용의 서문에 “우리나라는 시가 뛰어나서 당송의 시와 나란히 할 수 있다. 또 사람의 성정을 도야시킴이 ≪시경≫과 같다. 따라서, 이 시를 통하여 사람들의 성정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서 편집자는 우리나라 시의 우수성을 당송에 비견시켜 입증시키려고 하는 주체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가 사람의 마음을 교화시킬 수 있다는 시의 효용성을 깊이 신뢰하였다. 그 시대의 도덕성의 상실을 인식하고 이를 구제하려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시선≫의 서문은 당시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한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극히 인습적이고 추상적인 태도로 ‘심성의 도야’만을 부르짖어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인식에 의하여 취택된 작품들이 편자의 의도대로 얼마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같은 시대에 편찬된 장지연(張志淵) 등의 ≪대동시선 大東詩選≫에 비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상대적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대동시선≫에서는 이미 신분적 차별을 넘어 평민·여성·하층민의 시를 대거 편입시켜 민족적 역량을 결집하려 하였다. 그리고 민족적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식이 명백히 드러났다. 이것에 비하여, ≪해동시선≫에는 여전히 봉건적 특권의식의 잔영이 남아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가 전통이 부정되고 허물어져가는 변화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시관을 견지하고, 그러한 시관에 의하여 한문학이 소멸되어 가는 시기까지의 시를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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