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8년황해도 지역의 교육을 위해 조직된 교육계몽단체.
개설
설립목적
기능과 역할
회장에 송종호, 고문에 노백린(盧伯麟)과 장의택(張義澤)이 추대되었고, 학무총감에 김구(金九)가 선임되었다. 목적은 황해도 각처에 설립되어 있는 교육기관을 유기적으로 연결, 통일하여 교육 보급의 신속화를 자극, 촉진하자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각 면마다 소학교를 1개씩 설립하고자 하였으며, 재정은 주로 면학회에서 부담하였다.
실제 이 단체에서는 구식 서당을 근대적 민족학교로 전환시키고자 하였으며, 학무총감인 김구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교육 상황을 살피고 학교 설립을 역설하였다. 1909년 제2차 총회가 장연(長淵)에서 개최되었는데, 회장으로 노백린이 선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교육활동은 일제의 국권침탈 직후인 1910년 12월부터 1911년 3월에 걸쳐 있었던 소위 안악사건(安岳事件, 일명 안명근사건)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안악사건은 안명근의 군자금 모금을 빌미로 황해도 일대의 민족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한 일제의 민족운동탄압책이었다. 김구·최명식·김홍량(金鴻亮) 등 해서교육총회 지도자들이 이 사건으로 모두 검거되어, 활동이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 『백범일지(白凡逸志)』
- 『안악사건(安岳事件)과 삼일운동(三一運動)과 나』(최명식, 긍허전기편찬위원회, 1970)
- 「해서교육총회(海西敎育總會)」(한수익, 『한국기독교사연구(韓國基督敎史硏究)』 24, 1989)
- 「신민회(新民會)의 창건(創建)과 그 국권회복운동(國權恢復運動)」하(신용하, 『한국학보(韓國學報)』 9,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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