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독립운동가 김건영(金建永)의 살림집이다.
김건영은 이 곳 출신의 김창숙(金昌淑)이 일차 유림단 의거의 일환으로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을 전개할 때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유림들의 연명을 위해 크게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갖은 곤욕을 겪다가 72세의 나이로 인해 석방되었으나,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 때의 공적으로 1995년에 대한민국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김건영가옥은 이 지방의 상류주택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구자형(口字形)의 평면을 취하고 있는데, 출입구의 위치가 사랑채 사이에 난 중문을 통하도록 한 일반적인 정면출입형(正面出入形)과는 달리, 우측면 사이에 난 중문을 통하도록 한 측면출입형(側面出入形)이다.
이러한 측면출입형은 1800연대 이후에 건립된 주택에서 자주 나타나는 형식으로, 특히 봉화(奉化)지역에서 이러한 형식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상부 가구는 사랑채는 대량(大樑)위에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운 삼량가(三樑架)이며, 안채는 대량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량(宗樑)을 받게 하고 종량위에는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宗道里)를 받게 한 오량가(五樑架)의 구조이다.
이 가옥은 1800년대 후기의 가옥으로 지역적, 시대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사랑채는 이 지역 유림들의 연명장소(聯名場所)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곳이다.